행동하는 믿음
“주님, 왜 저인가요?”
고통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삶을 영원히 바꿔 놓을 최악의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남자아이 셋과 여자아이 하나를 둔 부모다. 2007년 우리의 딸 개브리엘은 척추 아랫 부분이 미발달한 상태로 태어났다. 이것은 선천적 장애인데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이분척추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 출산 당시 개브리엘은 꼬리등뼈 쪽 병변이 열려 드러나 있었다. 나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꿔 버릴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분척추란 척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신경관 결손증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척수와 신경계에 영구적인 손상을 초래한다. 개브리엘은 탄생 일주일 만에 뇌수종이 발생했다. 뇌수종이란 뇌실이나 두개강 내에 뇌척수액이 과다하게 축적된 상태를 말한다.
이분척추를 초래하는 신경관 결손은 대부분 자신이 임신했는지도 모르고 있을 시기인 임신 4주 내에 발생한다. 나는 임신 기간 동안 모든 검사가 정상이었고 딸아이의 상황은 출산 뒤에야 알았다. 우리가 그날 느낀 충격을 독자들은 상상할 수 없으리라. 개브리엘은 척수수막류라 불리는 가장 심각한 형태의 이분척추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수술 준비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 139:13~14).
감염 위험을 줄이고 척수를 더 큰 손상에서 보호하기 위해 개브리엘은 즉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척추를 개복하면 척추에 있는 신경이 손상을 입게 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뇌수종을 치료하려면 뇌척수액을 빼내기 위해 션트를 영구적으로 뇌에 삽입해야 했다. 작고 무력한 갓난아기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두 번이나 수술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앞으로 딸아이가 지니고 살아야 할 많은 결함에 대해 의사에게 이야기 듣는 것은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었다. 끔찍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분척추’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손상을 입은 신경은 개브리엘의 신체 여러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방광 이완으로 인한 실금이 생겨 간헐적인 방광도뇨가 필요했다. 다리와 발에도 문제가 생겼다. 개브리엘은 구부러진 발을 교정하기 위해 여러 번 수술을 받았다. 그 시기 내 딸이 겪게 될 미래가 어떨지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아기가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잡고 싶었지만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 희망의 끈을 부여잡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현실에 적응하기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사 38:14).
개브리엘을 집으로 데려가도 된다고 허락받고 아이를 돌보면서 나는 엄청난 두려움과 지독한 의심으로 얼어 버렸다. 나는 계속 하나님께 물었다. ‘왜 저인가요?’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 당시 나는 끔찍한 감정적 기복으로 끝없이 감정이 오르내리고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에는 숨을 쉬지 못할 것처럼 꺼이꺼이 눈물을 터뜨렸다가 뒤이어는 개브리엘의 발로 까꿍 놀이를 하며 아이를 웃겼다. 내 안의 뭔가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나의 주님, 나의 구주께서 고쳐 주셔야 했다.
부드럽고 거룩한 깨우침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도를 많이 드린 뒤에 내 머릿속에 전구가 번쩍 켜진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아직 개브리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차분하게 떠올랐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드시고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분이 하나님 아니시던가?’ 그랬다.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나의 태내에 개브리엘을 만드시고 소중한 아이를 선사하셔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불평과 자기연민을 멈추고 새로운 질문을 시작했다. ‘주님, 저라고 왜 안 되겠어요?’ 누구든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련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해결책을 기다리며 붙잡을 것이라고는 믿음밖에 없는 때가 있고, 해답이 있으리라는 단순한 믿음을 힘입어 가장 어두운 순간을 통과하기도 한다. 시련의 순간에도 전진하게 하는 열쇠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마음의 그림에 의지해 삶을 내다보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믿음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시련보다도 강하시며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한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믿고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에 내맡기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개브리엘은 이제 12살이 되었고 스포츠, 수영, 여행을 좋아한다. 걸음마다 수많은 기적이 딸아이를 아름답고 강한 청소년으로 자라게 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특별히 돌봐 주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는 ‘나는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을 제 입으로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갖가지 장애에 대해 개브리엘은 자신의 난관을 해결하고도 남을 만큼 더 많이 복을 받았다. 처음에 나는 딸아이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아이를 위해 마련하신 놀라운 미래를 막고 있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주님은 개브리엘의 삶을 통해 보여 주셨다. 해마다 딸아이는 습득과 성장의 신기원을 이루어 냈다. 개브리엘은 정말 기적의 아이였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개브리엘을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결국에 화는 언제나 복이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풍성한 사랑의 증거가 된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 개브리엘에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의 내일을 누가 붙들고 계시는지를 알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샤론 에니스 작가, 저널리스트, 사업가이며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살고 있다.
캡션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개브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