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고 싶은
안전한 교회
안전한 교회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취약 계층에 대한 학대가 거의 매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학대는 “바깥세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재림교인을 포함한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 가정과 교회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애드벤티스트 월드> 편집인 빌 노트와 제럴드 클링바일은 최근 “‘안전한 교회’를 확립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전 세계 교회 지도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대총회에서 윌리 올리버 가정봉사부장, 일레인 올리버 가정봉사부 부부장, 라켈 아라이스 여성전도부 부부장, 카르닉 두크메찬 법인소장, 피터 랜들리스 보건전도부장, 엘라 시몬스 대총회 부회장, 토르벤 베르글란 보건전도부 부부장, 앤서니 켄트 목회부 부부장이 함께했다.
11
artvnow.com에서 인터뷰 내용 전체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빌 노트: ‘안전하다’는 말과 ‘교회’라는 말을 합한 ‘안전한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윌리 올리버: 지도자와 교인 모두가 전 교인의 정신적·영적·신체적·정서적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장소, 그런 환경이 떠오릅니다.
라켈 아라이스: 그 말을 치료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경청하고 식별하고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는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이요.
카르닉 두크메찬: 총을 맞을지 학대를 당할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곳.
일레인 올리버: 카르닉 소장님과 비슷해요. 자녀들을 데려갈 수 있고, 자녀들이 편안함을 느끼며 놀고 다치지 않는 곳, 학대받지 않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그려지네요.
피터 랜들리스: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뿐 아니라 환대받고 보살핌 받고 포옹받을 수 있는 장소가 떠오릅니다. 폭력과 학대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곳이요.
엘라 시몬스: 피터 부장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완전히 소속되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어요. 저는 안전한 교회란 성별, 인종적·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완전히 인정받고 지지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떠오릅니다.
토르벤 베르글란·: 안전한 교회라는 두 단어가 참 좋습니다. 안전한 것은 기본적인 필요입니다. 우리는 안전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안전하지 않다면 성장하기도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겠죠. ‘안전’과 ‘교회’라는 단어를 결합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장소를 꿈꾸고 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교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은 결코 100퍼센트 안전하지 않아요.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좋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이 늘 있는 법이죠. 따라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교회가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노트: 늘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구별된 장소나 다른 곳에서 폭력과 학대가 일어났다고 전하는 국내외 소식들을 우리 모두가 접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안심할 만한 장소가 되도록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있나요?
윌리 올리버: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 수합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요. 기도하고 헌금을 걷는 집사들이 있죠. 또 교회 앞자리와 뒤쪽 출입구 근처에 전략적으로 집사들을 배치했어요. 헌금 같은 무방비한 순간에 교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집사회 전체가 전문적 안전 요원에게 훈련을 받습니다.
시몬스: 윌리 부장님의 말은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우리는 교회 재산의 안전을 원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또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겠죠. 여기에 대해 준비된 교회들이 있어요. 우리 교회의 경우 집사님들과 봉사자들이 전략적으로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지켜봅니다. 어린이 교회를 운영할 때는 아이들 본당에서 부속 예배실로 이동하는데 이때 부모나 보호자가 어린이들을 등록해야 하는 안전 시스템이 있어요. 어린이들이 드나들 때 서명을 하도록 하지요. 또 아이들은 이름표를 달아야 하고 신원이 확인된 공식 담당자나 부모가 대동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해요.
노트: 여러분의 교회에서 이러한 종류의 문제들에 관해 어느 정도로 훈련해 왔는지 인지하고 계신 분은 몇 분이나 될까요?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런 점을 보다 많이 인식하고 있는 교회에 다니신다니 참 다행입니다. 재림교회 중 안전한 교회를 위한 준비된 곳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두크메찬: 아마 50퍼센트 미만일 거예요. 북미지회에서는 교회 봉사자들에 대한 신원 확인이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았어요.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자뿐 아니라 교회 내 모든 봉사자에 대해서요. 장로, 집사, 부서장 모두가 신원 조사를 받아야 해요. 어린이를 보호할 뿐 아니라 거짓 고발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도요.
제럴드 클링바일: 더 거시적인 입장에서 우리는 교회 내 안전을 확보할 만큼 충분히 일해 왔을까요? 지금까지는 어린이, 돈, 신체적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해 왔을까요?
두크메찬: 문제가 닥치기 전까지는 그랬다고 말할 수 있겠죠. 문제를 만나면 “거 봐요. 우리는 그렇게 했어야 했어요.”라고 말하겠죠. 우리는 항상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요점은 다양한 모든 면을 고려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라이스: 대총회에서는 2001년부터 학대의 잠재성에 대한 인식을 키우기 위해 특별한 안식일을 제정했어요. 교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문제와 대응법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할 수 있도록 자료와 재정을 제공하여 신앙 공동체와 지역 사회에 안전, 학대 문제를 환기시키는 날이지요.
베르글란: 그런 계획과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정말 좋군요. 하지만 프로그램과 정책이 좋고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실천이 종종 부족해요.
앤서니 켄트: 교회는 그 지역 내의 가족들의 거울이라서 지역 사회로 더 나아가야 해요. 우리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더 폭넓게 지역 사회의 안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교회는 마음 놓고 믿음을 찾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 성소가 되는 것이지요. 안심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의 믿음이요.
랜들리스: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쉽게 신체적인 안전, 금전의 안전에 대해 토론하지만 가정 폭력 같은 여러 형태의 학대 문제는 언급을 피합니다. 우리가 너무 자주 피하는 영역이죠.
베르글란: 지도자와 제직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우들과 어린이 교육 또한 중요해요.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학대에 해당하는 특정 행동과 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이들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아라이스: 민감한 문제들을 단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동안 금기시되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 대총회에서는 지역 교회를 위해 많은 교육과 자료를 마련해 놓았어요. 재림교회는 이제 학대, 안전, 기타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많은 다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일레인 올리버: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지역 교회에서 항상 이러한 자료들을 인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페이스북뿐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을 이용할 필요가 있어요. 십 대와 청소년, 대학생 대부분이 인스타그램과 스냅챗을 사용하죠. 청년들과 협력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로 말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켄트: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훌륭한 자료 중 하나는 성경이죠. 성경은 폭력의 피해, 학대, 개인적인 외상 등 다양한 문제들을 거리낌 없이 언급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러한 성경절을 대중 앞에서 읽기조차 불편해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은 이유가 있어서 기록된 것이지요.
노트: 교회 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의 배후에는 이른바 ‘가정 폭력’ 또는 ‘데이트 폭력’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고 여러분이 언급해 주셨습니다. 목회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런 점을 알고 계실 텐데요. 교회가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평가해 주십시오.
윌리 올리버: 많은 것을 하고 있고 제 생각에는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라겔 부장님이 언급하셨듯이 ‘엔드잇나우(EndItNow)’ 프로그램이 그 분야 자료들을 제공합니다. 가정봉사부 또한 자주 이러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우리는 TV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개발했고 목회자들은 이제 폭력에 대해 설교하고 이야기합니다. 인식의 증가가 있었지만 더 많은 필요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겠습니다.
시몬스: 목회자 교육과 훈련 같은 공식적인 교육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또 해야겠지요. 의식적이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언어 표현, 연구, 뉴스 매체 등을 대해야 해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다가 우리 주위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지역 사회와 이런 형태의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베르글란: 재림교회는 안식일학교, 개척대, 학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갈 크나큰 기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언급하고 교회 표준을 세워야겠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옹호하는 가치니까요.
클링바일: 예방에 대해 의논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러한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윌리 올리버: 안타깝게도 거기에 대해 충분히 잘 준비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더 자주 폭력에 직면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례들에 대해 많이 고심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교회는 책임을 느껴야 해요. 먼저, 믿음의 공동체로서 목회자들이 적절하게 훈련받고 폭력뿐 아니라 폭력적인 모습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해요. 또 특정 언어와 몸짓 언어가 사람들에게 학대받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말하고 행동하고 몸짓으로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안심할 수 있게 해야 해요.
노트: 여성분들에게 여쭤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교회로 걸어 들어갈 때 여러분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 장소가 여러분에게 안전한 장소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시몬스: 자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우리는 몸짓 언어를 예민하게 읽어 낸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자신을 어떻게 쳐다보고 또 어떻게 말하느냐뿐 아니라 그 이상이지요. 저는 새로운 환경에서 개개인이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봅니다. 남편과 아내의 상호 관계,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교류, 어른과 아이의 상호 작용을 보는 것이죠. 전 세계의 어느 문화 환경을 접하든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취할 행동을 결정하지요.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명백한 적신호가 보일 때가 종종 있어요.
일레인 올리버: 교회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솔직히 우리 교회는 아직도 상당히 남성 중심적이에요. 남편 윌리 목사와 교회에 가게 되면 지도자들이 말하죠. “남편만 말합니다. 남편만 예배 시간에 등단합니다.” 문화적 환경을 존중해야겠지만 동시에 저는 말해요. “이곳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신념 체계와 하나의 문화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데 대한 규정을 지닌 세계적인 교회 아닌가요?” 이런 짐을 여성들이 감당하고 처리해 가야 하지요.
학대와 폭력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을 때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들은 준비되었는가? 충분히 교육을 받았는가?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개인의 문화적 신념에서 벗어나 실제 상황을 대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아라이스: 일레인 부부장님과 엘라 부회장님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놀라운 분석을 해 주셨어요.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여성이 학대받고 있고 때때로 교회가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완전히 그 문제를 무시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식별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치료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해요. 중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종종 실패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모든 부서가 협력해서 지역 교회 수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두크메찬: 그 점도 중요하고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교회가 개방된 곳이라는 점이에요. 다시 말하면 지나가다가 들어오는 어떤 사람이든지 환영하는 곳이지요. 따라서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보호와 안전에 특히 신경 쓰고 안전 대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노트: 덧붙여 제가 찾아본 온라인 토론과 관련해 카르닉 소장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당국에 고발하지 않고 어떻게든 교회 시스템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선량한 몇 분이 제안했습니다. ‘형제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표현을 그분들이 사용했지요. 이런 분에게 어떤 말을 해 주겠습니까?
두크메찬: 만약 여러분이 목회자이거나 폭력 사건을 법적으로 보고해야 할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보고할 의무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보호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믿든지 믿지 않든지 더 빨리 당국이 그 상황을 조사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당국자들이 일하게 하십시오. 조사는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조사하려고 한다면 당국자들의 조사를 망칠 수 있습니다. 항상 보고하고 당국자들이 그 문제를 다루게 하라는 것이 저의 조언입니다.
노트: 교회와 공동체의 이미지에 곤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에도요?
두크메찬: 물론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만 감옥에 가는 위험을 겪는 게 아니라 조직에 법적 책임이라는 위험을 안겨 주기 때문이죠.
켄트: 그러면 더 큰 곤란과 수치를 떠안겠지요.
윌리 올리버: 우리의 관심이 교회를 곤란하게 할지 아닐지가 아니라 안전이 되어야겠습니다.
두크메찬: 하지만 우리는 또한 고소당한 개인을 위한 보호도 제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사를 통해 적절한 혐의가 없다고 판명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일레인 올리버: 누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인지해야 해요. 이것은 단순히 낯선 사람을 구분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들 무신경하게 지문 채취나 신원 조사의 필요성도 간과하고 말 거예요.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해요.
시몬스: 모든 학대 문제에 제로 관용 정책과 관점을 채택한다면 제로 관용 환경이 요구되니까 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겠죠. 우리가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 제가 확신할 수는 없군요.
클링바일: 교회 내 안전과 투명성을 영적인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 보죠. 지역 교회뿐 아니라 다른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니까요. 여러 기독교 교단에서 밀레니엄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인들의 영적인 발언과 실생활 사이의 불일치를 목격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영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윌리 올리버: 저는 교회의 개방성이라는 관점에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의 생각이 어른들에게는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기에 종종 무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안전의 부족이라고 봐요. 교회에서의 안전, 성도들 간의 안전이란 누군가 특히 우리의 젊은이들이 다른 견해를 지닐 때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건 틀렸어. 우리의 신념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고 “그런 생각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좀 더 말해 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으로요.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환경을 독려해야 해요.
아라이스: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문화와 전통을 무시할 수 없지만 제가 어느 나라에서 여성 약 3,000명에게 자유롭게 말할 기회를 드린 적이 있어요. 그 지역의 목회자들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죠. 대총회 <사업 규정>에 있는 정보, 진술, 정책들이 항상 그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것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태였지요.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는 지역 교회 여성들이 폭력을 삶의 일상적인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참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거기서는 가정 폭력을 겪는 여성이 많았는데 <교회요람>이 명시하는 바를 처음 들었던 거예요. 그것이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어요. 처음으로 그들은 “그렇죠! 교회에는 이에 대한 조항이 있고 우리는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거죠.”라고 말할 힘을 얻었습니다.
베르글란: 우리는 영적인 관점에 기초한 제로 관용 정책을 마련해야 해요. 폭력은 사랑의 반대입니다. 사랑의 열매에는 결코 어떤 형태의 폭력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또한 가해자에 대해 명확하고 강력한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해자를 위한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몬스: 영적인 해답을 위해 우리는 창세기로 갈 필요가 있어요.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자신의 피조물들을 보살피고 보호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모든 생명은 보살핌을 받고 보호받아야 해요. 삶에서 하나님의 지도하심과 가르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큰 책임이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생명을 보살피고, 보호하고 그리고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어야 해요.
라켈 부장님이 전해 준 사례처럼 교회에서 정보나 영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은 영적인 폭력입니다.
윌리 올리버: 지당한 말씀이에요. 성경은 매우 명확하게 말하고 있어요. 성경의 문화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말하고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문화이며 이것이 우리 모든 믿음의 공동체에 스며들어야 할 성경 문화입니다. 따라서 폭력 그리고 남을 다치게 하고 그 행위를 문화의 일부로 여기는 일은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해요. 그것은 경건한 문화가 아니라 사탄의 문화이니까요.
노트: 자동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가치관을 후세대에 전하기 위해서는 강단과 훈련 과정에서 그리고 교육의 현장에서 용감하게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