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곳을 찾아서
빌 노트
‘거룩한 것’과 ‘안전한 것’ 사이에는 오래되고 흔들림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성경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고통과 위험에 처한 사람이 법적인 보호나 심지어 기소를 구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겼다. 복수심이 들끓는 상황이 발생할 때 하나님은 사려 깊고 신중한 정의 편에 서실 것이며, 힘 있는 자의 표적이 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은 그분의 임재 안에서 ‘폭풍 속의 피난처’를 발견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회에서 ‘성소’ 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교회는 폭력, 강탈, 학대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특히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성전 휘장이 찢어지면서 ‘교회’는 예배드리는 물리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신자들이 거룩한 것을 나누고 간직해야 할 공동체로 그 위치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바뀌었다. 성령께서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삶에 거하시며, 신자들이 머물고 일하고 증언하는 장소들과 관계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 땅의 성소는 더 이상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도 심지어 회막도 아니다.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안전과 평안을 찾는 돌봄과 보호의 공동체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 공동체를 포함하여 그 어떤 공동체에도 학대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기도하며 일해야 한다. 성별, 나이(어린이나 노인), 신체적 조건, 출신 국가, 피부색 때문에 피해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약 1:27) 종교, ‘안전한 것’과 ‘거룩한 것’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종교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깊이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어디서든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지구에서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절망스러울 때도 말을 꺼낼 수 있고, 상심할 때도 함께 예배할 수 있고, 함께 어울리며 배울 수 있는 안전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번 달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커버스토리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를 읽으면서 자신의 교회를 이와 같이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로 헌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