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오솔길
마른땅
최소한 열 번, 성경에서 강과 바다의 마른땅 위를 건너간 세 가지 사건을 언급한 횟수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넜다. 또 광야에서 40년간 떠돈 뒤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고 수 세기 후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에서 그랬다. 마른땅이라고 했다. 물 밑바닥을 디딜 때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하며 끈적임이 전혀 없는, ‘마른’땅이라는 말이다.
“마른땅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애초에 물을 가르셨다는 사실만큼이나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물을 가른 일이 놀라운 기적이었음을 부정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건너가기 좋도록 즉시 땅을 마르게 한다는 것, 그것은 그 기적 중에서도 특히 “와!”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다.
섬세하신 하나님
그런데 이것은 그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를 넘어선다. 확신과 용기를 주는 행위이다. 큰 그림을 보시는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신다. 다음의 세 가지를 행하신 분이라면 다른 중요한 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기적을 완벽하게 수행하실 수 있다.
첫 번째 예로 창조가 있다. 이것은 재림교회를 포함해 여러 집단에서도 뜨거운 주제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세상을 작동시킨 뒤 알아서 계속 움직이도록 부재지주(不在地主)처럼 물러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것은 마치 물을 가르고 나서 이스라엘 민족이나 엘리야와 엘리사가 진흙탕을 철벅철벅 걸어 목적지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들이 “마른땅”을 건넜다고 성경은 여러 번 확언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예배에 관한 문제다. 하나님은 자신을 언제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해 모호하게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매우 구체적이시다. 그분은 제칠일 안식일에 우리와 함께하고자 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서 그분을 섬기기를 바라신다. 안식일에도 마찬가지다(사 58장). 우리 하나님은 섬세한 하나님이시다. 나는 큰 그림을 볼 뿐 아니라 세부적인 부분도 챙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세 번째는 구원의 문제다. 구원은 자기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명히 밝히셨다. 논쟁의 여지가 없다. 용서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 또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요단강이나 홍해의 반대편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구원의 진흙탕을 걸어갈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의 죽음을 통해 “물을 가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써 그 땅을 마르게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로부터 살려 내셨다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거나 살아 있는 그분의 자녀 모두에게도 이 같은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실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가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행하신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물을 가르는 일처럼) 하나님께서 큰일에 관여하실 때는 기꺼이 그분의 공을 인정하려 하지만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그분에게 그런 것이 너무 하찮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 스스로 진흙탕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의 삶에 대해서라면 큰일, 작은 일을 구분하지 않으신다.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를 위해 매 순간 숨과 생명을 주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가 매일 힘겨운 삶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도록 도우실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직장 혹은 집을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신다. 열쇠나 콘택트렌즈 또는 중요한 문서를 잃어버렸을 때도 그곳에 계신다. 이 다음에 또 받아야 하는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에 자신이 없을 때 혹은 남은 돈으로 월말까지 버틸 대책이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가 결혼 상대에게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을 때도 곁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마른땅”으로 이끌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그분이 무능하거나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마치 바사 왕국의 군주가 막아서는 바람에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는 데 3주가 걸렸다고 말하는 천사(기별꾼)의 경우와 같다(단 10:13). 가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다. 나는 그러한 경우를 개인적으로 몇 번 경험했다.
물을 가를 뿐 아니라 땅을 마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릴 때는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힘을 키우고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불행히도 아담과 하와는 믿음을 평가하는 시험에 실패했고 이후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답습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계속해서 믿음을 붙들기로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부족으로 생긴 손상을 되돌릴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창조 주간에 물과 땅을 분리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날 마른땅에서 우리를 살피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냥 기다리라. 그리고 그분의 활약을 목격하라.
샤론 클라크 교육학 석사이며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 있는 재림교회 교육 기관인 콜큇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교사이다.
발문
구원은 자기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명히 밝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