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인생 교훈
새해가 왔다. 이맘때면 전 세계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한다. 내 결심은 간단하다. 행복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힘을 얻는 원천으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슬픔은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예를 들어 내 친구 마이클은 노련한 가수처럼 세련되고 멋들어지게 슬픔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슬픔이 예술이라면, 내 친구는 슬픔에 생명을 불어넣는 르네상스 화가일 것이다.
마이클은 걸음마를 배우던 시기에 엄마를 잃었다. 친척들 말로는 마이클은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만이 달랠 수 있는 그런 아이라고 한다. 엄마만큼 마이클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마이클에게 엄마의 죽음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서서히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점점 쇠약해져 갔다. 엄마의 면역계는 약탈자처럼 엄마를 공격하는 질병과 싸울 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어린 마이클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느꼈던 슬픔과 고통을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이클은 아직도 힘들어한다.
마이클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처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마이클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마이클을 자기 자식같이 키웠다.
살면서 예기치 않게 부딪치는 시련은 저마다 다르다. 마이클은 울타리 안에서 안락하게 살 팔자가 되지 못했다. 사랑으로 가득한 가족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마이클을 친아들처럼 받아들여 키워 주시던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마이클은 이해가 안 되는 차 사고로 친한 친구를 잃었다. 이 사고로 마이클의 친구는 죽었지만 다른 탑승자 13명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또 다른 친구는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목숨을 끊는 바람에 마이클이 한밤중에 그 친구의 시신을 영안실에 안치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마이클은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요 10:10)러 오신 분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또 간절히 소망하는 법을 배웠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사 65:25),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 곳(계 21:4)에 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6~18).
그리고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 새장에 갇힌 새에게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은 주인이 새장을 다 가리고 새가 배워야 할 노래를 강제로 들려주고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 밝은 대낮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들어 주의가 산만해지면 새장에 갇힌 새는 주인이 가르쳐 주려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마이클은 슬픈 일을 겪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가르치고픈 노래가 있다. 고통의 그늘 아래서 그것을 배우게 되면 이후에는 영원히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치료, 472).
마이클은 인생에서 기본 상수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하나님에 고아는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고아의 아버지”(시 68:5)이시다.
2020년을 마음먹고 행복한 해로 만들어 나갈 우리에게 마이클의 경험은 슬픈 일을 겪더라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프레더릭 키마니 케냐 나이로비에서 고문 의사로 근무하며 음악으로 하나님과 젊은이들을 연결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