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하나님이 재림교회에 주신
최고의 선물들을 확인하는 특별한 방법
생명의 시여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기별로 삼고 있는 재림교회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이 기별을 널리 전할 수 있을까? 지구 이 끝과 저 끝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재림교인 3명의 생각을 여기 소개한다.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손길을 살펴보자. – 편집실
정체성의 추구
우리는 일과 교육을 중요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꿈의 직업을 얻기 위해 시간의 대부분을 교육받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행복으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한다. 성공하면 삶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실패하면 삶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하느냐’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되느냐’로 무언가를 ‘하느냐’가 결정된다(엡 2:10).
친구 중에 프로 럭비 선수가 있다. 운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자신을 럭비 선수로만 여겼다. 그런데 자동차 사고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끝나 버린 이력에만 정체성의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우울해지고 자살 충동마저 느꼈다.
정체성을 확인하고픈 갈망은 이기적인 게 아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질적인 욕구이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준다.
신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3장 17절에서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처음 등장한다. 다른 공관복음서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랑’ 역시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였다(막 1:11; 눅 3:22).
예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말씀을 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것이 바로 정체성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기뻐하는 자라.” 얼마나 강력한 확증의 말씀인가.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일하면서 정체성을 이루어 가고 확증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잠잠히 정체성을 부여받고 그분의 말씀에서 그 확증을 얻는다. 교회는 확증을 얻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침례 당시 그리스도에게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면 목적과 의미가 생긴다. 이것을 확립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교회나 지역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사느냐로 자기 가치를 매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가치는 인생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사람인지로 헤아려지고 확인된다.
롬 울리아 호주 노스뉴사우스웨일즈합회에 있는 학교 부목사로 일하다 최근 미국 워싱턴합회로 부름 받았다. 케티 울리아와 결혼하여 예쁜 자녀 다섯을 두었고, 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끄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압박 속에서도 희망을
인생의 바다에서 나의 믿음은 시험을 받았지만 그 시험과 시련 덕분에 나는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의 달콤하고 향기로운 은혜를 경험했다.
내가 태중에 있을 때 나의 부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재림 신앙을 선택하고 침례를 받았다.
어린 시절 나는 안식일학교에서 암송하고 전도하고 배우는 법을 익혔다. 활동적인 청년 지도자가 되어서는 앞에 나가 마이크를 붙잡고 말하는 법, 큰 계획을 짜는 법,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법을 배웠다. 패스파인더에서는 굳세고 혁신적이고 마음으로 노래하고 남을 격려하는 법도 배웠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삼육교육을 받으면서, 교복도 착용하고, 수학과 교회 선각자들에 대해서도 배우고 철자법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을 배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분의 이끄심을 따라 나는 학생 선교사가 되어 인구 6만 1,000여 명인 작은 나라 토바고에서부터 14억 인구가 사는 인도에 이르기까지 6개월 동안 색다른 음식도 맛보며 복음대로 사는 이들과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집으로 무사히 데려오셨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기관 사역과 결혼 생활이 지속되지 못했다. 이혼은 인생의 오점으로 남았다. 동료 교인들은 나와 함께 그리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 주고 무슨 말을 삼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숨을 쉬려고, 믿으려고, 도움을 받으려고 버둥거렸다. 내 친구들은 어디 있는가? 내 교회는? 나는 그분께 모든 것을 드렸는데, 그분께서는 어디 계신단 말인가? 그래도 계속 안식일마다 교회에 갔다. 도움이 되는 말을 듣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기름처럼 들끓는 인생 속에서도 믿음의 작은 겨자씨는 싹을 틔웠다. 기적적으로 은혜와 자비의 향기, 하늘의 손길을 경험했고, 너덜거리고 기진맥진한 나의 심령은 다시 하나님께 이끌렸다. 인생의 극심한 폭풍에 맞서도록 지금까지 나의 믿음을 키워 준 교회가 있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림교인다운 사람이 되었다.
카리사 로이 앤드루스 트리니다드 토바고 공화국의 토바고섬 스카버러에 살고 있으며 10년 이상 재림교회의 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생명을 공급하고 유지하고 풍요롭게 하는 음식
포틀럭은 재림교회의 참 좋은 전통이다. 예배가 끝난 뒤 교우들이 함께 식사하는 교회가 많다. 밥, 샐러드, 맛있는 디저트, 따뜻한 수프, 집에서 만든 빵, 파스타, 케이크까지 맛있는 음식들은 항상 군침을 돌게 한다. 외국인이 많을수록 더욱 다채롭고 흥미로운 뷔페가 된다. 시나몬, 고수, 육두구, 사프란, 강황과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로 외국의 이야기와 문화를 소개하는 진정한 맛의 경험은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우리 교회의 포틀럭은 종종 방문객들, 그중에서도 삶의 문제와 도전으로 힘겨워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제공한다. 온화한 미소, 따뜻한 음식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는 그들에게 커다란 복으로 다가온다. 겨울에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좋은 음식을 큰 가방에 담아 제공해 준다. 그러면 그들은 행복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음식은 서로를 연결해 준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삶을 유지하고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셨다. 성경에서는 그분이 종종 제자들, 서기관들,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다고 말한다. 이 섬김을 교회는 본받아야 한다. 포틀럭이나 오찬은 교인, 방문객들과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나누는 멋진 기회이다. 음식 그 이상을 전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보살피는 친교는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식사 자리에 초청하신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9). 벌써부터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모두가 함께할 위대한 혼인 잔치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 구주께서는 테이블의 상석에 앉으셔서 각 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실 것이다.
거기서도 포틀럭으로 준비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거기서는 하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디아 모어 독일 재림교회 홍보 담당이며 오스트필더른에서 남편인 옌스-올리버, 딸 멜로디와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