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시대의 윤리
우리 도덕성의 뿌리는 성경
윤리적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응답하는 사람에 따라, 출신 배경에 따라, 자기 도덕성을 누가 혹은 무엇이 결정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다를 수 있다. 결국 윤리는 사람이 지닌 도덕성에 기반을 둔다.
특정 사회 내에서 통용되는 윤리에 대해 문화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 성공적인 컨설턴트 회사는 이런 정의를 내린다. “윤리적 행동이란 사회와 개인, 업무에서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가치와 일치하는 방식의 행동을 의미한다.”1
이런 많은 세속 모델에서는 ‘사회와 개인, 업무’가 윤리적인 행동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서 윤리적인 것이 다른 문화 규범에서는 윤리적이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이들 윤리는 문화에 따라 변한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 같은 성경 원칙을 수긍하는 문화와 국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편적인 윤리적 행동을 결정할 때 하나님이 주신 더 숭고하고 변함없는 도덕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체 문화
그렇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은 변하지 않으며 그것이 모든 문화를 대체한다고 인정한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행동 강령이 우리의 윤리를 결정한다. 200여 나라와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때 남은 백성은 하나님의 도덕법에 따라 행하고자 하며, 그 법은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행동의 윤곽을 보여 준다.
변하지 않으며 권위 있는 이러한 윤리적 행동의 도덕률이 다음의 성경절에 요약되어 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나이다”(눅 10:27).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 요약들은 십계명을 대체하기보다는 시간과 문화를 뛰어넘어 우리의 윤리와 행동에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도덕법의 주요 목적을 드러낸다.
완벽한 본보기
예수 그리스도는 윤리적 행동의 완벽한 본보기이시다. 널리 알려진 산상 수훈에서 그리스도는 하늘의 도덕과 행동을 설명하신다.
그는 말씀을 시작하는 팔복에서 하늘의 도덕 가치 즉 온유, 의에 대한 강한 갈망, 자비, 마음의 청결, 화평을 규정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빛이 되라, 계명을 지키라, 순수한 동기를 지니라, 배우자에게 충실하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 원수를 사랑하라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행동과 윤리적 기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말씀하신다. 모범 기도, 땅보다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는 격려, 염려하지 말라는 확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훈계가 가득하다. 예수께서는 요동하는 모래가 아닌 견고한 바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의 비유로 산상 수훈을 마무리하신다.
2,000년 전에 산기슭 풀밭에서 전하신 이 가르침은 윤리적 행동에 대해서 이전 어느 때에도 없었던 가장 강력한 말씀으로 수백 년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특별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서 그렇다.
참된 도덕성
예수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요구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셨는가?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산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내놓으신다. 우리는 품성의 완전을 위해 힘쓰라는 명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불가능한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셔서 우리를 애타게 하시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자신의 영역에서 거룩하시듯 우리도 우리 영역에서 거룩하라고 촉구하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드높은 영예를 부여하시는지! 그분은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있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이 무한한 권세를 주장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2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설명한다. “마음과 품성의 변화를 열망하는 자들은 사람을 보지 말고 거룩한 예증되신 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초청하신다. 회심과 변화를 통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아야 한다.”3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성령의 이끄심과 그리스도의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우리는 구원받고 그분에게 복종함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을 더욱 닮아 가게 된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라. 그리스도는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가 그분을 닮길 원하신다.
이 윤리는 시간과 문화를 초월한다. 이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는 복음과 불가분하게 묶여 있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모든 신체 조직에 이상이 생겼고 정신은 왜곡되고 상상력은 부패되었다. 죄는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켰다. 밖에서 오는 유혹은 마음속에서 공명을 얻고, 발길은 부지중에 죄악으로 향한다.”4
복음의 윤리
우리가 이런 비참한 상태에 남아 있게 놔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하였듯 죄의 더러움에서 회복되는 것도 완전해야 한다. 하나의 악행도 하나님의 율법은 면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불의도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윤리는 하나님 품성의 완전성만을 표준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서 우리의 모본이다. 하나님께서만이 심령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5
그분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뉘우치고 그분의 뜻에 우리의 뜻을 복종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이 놀라운 변화를 행하신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는 열쇠, 그분이 바라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개인과 교회가 되는 열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품성이다. …이 품성이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의 삶에서 그와 동일한 품성이 나타나길 바라신다. …오늘도 그분의 목적은 여전히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믿는 자에게 베풀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하는 선물 중에 이것처럼 위대한 것은 없다.”6
1 Nick Price, “Ethical Behavior for Board Members Is Culturally Driven,” BoardEffect.com, August 9, 2017, www.boardeffect.com/blog/ethical-behavior-board-members-culturally-driven/
2 Ellen G. White, “Let This Mind Be in You,” 『Signs of the Times』, Sept. 3, 1902
3 Ibid.
4 『치료봉사』, 451
5 앞의 책 451~452
6 White, “Let This Mind Be in You.”
테드 N. C. 윌슨 대총회장
발문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법은 변하지 않으며 그것이 모든 문화를 대체한다고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