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허물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넘었다. 최근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에서는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한 두 여성의 반응을 잘 묘사했다.1 현재 63세인 안젤리카 본딕은 사실 그 장벽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에게 장벽은 자연스러웠다. “그 장벽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불만도 없었어요.”
82세의 다그마 심도른의 대답은 달랐다.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리고 거기에 서 있었어요.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느낌이었지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장벽의 그늘 속에서 희생된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자금이 세상의 크고 높은 벽들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 장벽 중 다수가 현재는 관광 명소로 이용되고 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성벽은 힘과 보호의 상징이었다. 성벽이 없는 도시를 허약한 무방비 상태로 여겼다. 잘 지은 성벽은 적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성안의 백성을 가두는 역할도 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면 거주자들은 자신의 도시에서 포로가 될 수 있다.
역사책에는 자신이 거주한 성안에 갇힌 백성과 포위 전술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 난다. 기록에 의하면 기간이 가장 길었던 포위 공격 중 하나는 크레타의 수도 칸디아에서 일어났다. 17세기에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주요 강국이었지만 오토만 제국이 부상하면서 힘을 잃었다. 불행한 군사적 조치가 칸디아의 포위로 이어졌다.
포위 공격은 1648년에 물 공급이 중단되고 해로가 막히면서 시작되었다.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전투가 벌어졌지만 칸디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21년이 지난 1669년, 칸디아는 항복했다. 주민들은 챙길 수 있는 것을 챙겨 떠날 수 있다고 허락받았다.2
또 다른 벽
자신이 세운 벽 안에 21년 동안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라. 오늘날에도 우리가 만든 벽 안에 갇히는 일이 가능할까?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장벽을 세운 하나님의 백성이 너무도 많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벽이 아니라 영적인 벽이다. 이 벽들은 망치와 못 또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상과 전통, 편견과 두려움 때문에 세워졌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여기서 ‘중간에 막힌 담’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한 벽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말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은 1936년에 두 번째 성전터 근처에서 발견한 석회암 조각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어로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3
이방인은 누구라도 이 성전의 난간과 광장을 넘어갈 수 없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누구든지 그에 따른 죽음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예수께서 이 표지판을 지나시면서, 실제로 뒤따를 그분의 죽음이 자국민과 외국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죄에 대해 속죄할 것을 생각하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엘렌 화잇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주어진 고귀한 특권을 분별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고 자신들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다. …이방인의 행습을 따르지 않도록 우상 숭배자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제재를 빌미 삼아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분리의 장벽을 세웠다.”4
장벽 해체에서 얻는 교훈
예수님은 자신의 구원에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이 장벽을 허무셨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장벽은 세 가지 큰 손실을 입힌다. 제한하고 격리하고 고립시키는 것이다.
1. 장벽은 시야를 차단한다. 벽 너머를 쉽게 볼 수가 없다. ‘그렇게 하는 걸 본 적이 없어’라는 벽,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라는 벽이 있다. 장벽으로 시야가 차단되면 ‘볼 수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기 쉽다. 벽은 표현도 제한한다. 관습과 전통적 사고에 얽매게 하는 벽도 있다. 장벽은 창의성과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
2. 장벽은 입구를 차단한다. 벽은 사람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혼자 있고 싶을 때 벽을 세운다. 심지어 군중 속에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 문제는 우리와 가까워져야 할 사람까지도 차단한다는 것이다.
3. 장벽은 출구를 차단한다. 입구를 막으면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지만 출구를 막으면 사람들이 나가지 못한다. 교회는 결코 자기중심적인 곳이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좀처럼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는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통로를 어떤 것도 막게 해서는 안 된다.
불신의 눈초리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마 23:13). 다른 장소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다시 언급하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명심하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상관없다. 예수께로 나아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막는 것은 전부 다 무너져야 할 장벽이다. 예수께서 문을 열어 놓으신 곳에 우리는 감히 담을 쌓을 수 없다.
엘렌 화잇의 진술을 눈여겨보자. “지상 봉사 기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온 인류에게 구원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자유롭게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시고 이 멸시받은 백성을 존중하심으로 유대인의 바리새주의적 관습을 무너뜨리셨다. 그분은 그들의 집에서 주무셨고, 그들의 식탁에서 잡수셨으며, 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다.”5
허물어져야 할 장벽들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이 장벽들을 헐고 예수의 모본을 따르는 유용한 일꾼이 되자.
1 ww.usnews.com/news/world/articles/2019-10-24/from-alice-in-wonderland-to-walking-the-dog-germans-recall-fall-of-berlin-wall.
2 en.wikipedia.org/wiki/Siege_of_Candia.
3 www.timesofisrael.com/ancient-temple-mount-warning-stone-is-closest-thing-we-have-to-the-temple.
4 『사도행적』, 14
5 앞의 책, 19
브렌트 버딕 대총회 부재무이자 회계소프트웨어 부장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로렐에서 아내 안젤라와 어린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발문
교회는 결코 자기중심적인 곳이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좀처럼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는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