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램프
캐런의 어머니는 많은 물건을 모아들였지만 그중 값어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캐런과 남편 헨리는 지겹도록 긴 시간 동안 남은 물건들을 추려 내야 했다. 몇 가지는 자선 단체에 기부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엄마에게만 소중한 것이었고, 그 점이 캐런은 몹시 서글펐다.
마침내 집을 다 치우고 나자 캐런의 차 뒷좌석에는 팔거나 남에게 줄 수 없는, 엄마의 소중한 추억들만 남게 되었다. 헨리의 픽업트럭 뒤에는 엄마에게만 소중한 물건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제 옆 좌석에는요.” 캐런은 회상을 이어 갔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테이블 램프를 실어 두었어요. 유달리 아름답거나 특별할 것도 없는 고대 물 단지 모양의 푸른 도자기였죠. 전등갓은 약간 해져 보이기까지 했는데 제작자는 도자기를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불이 켜지고 꺼지게 만들었어요. 엄마가 손님들에게 가벼운 터치로 불을 켜는 마법을 보여 주면서 얼마나 즐거워하셨는지요. 그걸 그냥 버릴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이웃이 일하러 나간 사이 그들의 집이 완전히 불타 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헨리가 이야기를 거들었다. “둘 다 짐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를 끌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장거리 대형 화물차 기사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분들의 처지가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나 봐요. 저도 전에 대형 트럭을 몰았거든요.”
***
항상 도로 위에서 끼니를 때우는 트럭 기사들의 삶은 그다지 녹록지가 않다. 두 사람 다 집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 가스탱크가 폭발해 집이 폭삭 무너져 잿더미가 된 것이다.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그들의 고충을 짐작하면서 캐런과 헨리는 엄마의 낡은 식탁과 의자들, 침대, 서랍장, 부엌 용품, 솥과 냄비 그리고 트럭 기사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챙겨 픽업트럭에 실었다.
“화물차 기사 내외가 전날 밤 돌아와 우리 집 근처 작은 빈집에서 머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리로 향했죠.” 캐런이 말했다. “어머니의 보물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요.”
길고 구불구불한 흙길을 내려가야 그들이 사는 곳이 나왔다. 캐런과 헨리가 차를 몰고 그들의 집으로 다가가자 길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우리가 황토색 먼지 구름을 뚫고 나타났을 때 반짝이던 그분들의 눈빛을 꼭 보셨어야 하는데요.”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트럭 기사 에밀리와 척은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우린 괜찮아요.” 에밀리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냥저냥 버틸 만해요.” 그러다 에밀리가 픽업트럭에 실린 침대를 보더니 그리로 걸어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예전 집에는 딱히 잃을 만한 물건도 없었는데 근사한 매트리스가 딸린 진짜 침대가 정말 좋아 보이네요.” 에밀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침대, 매트리스, 하단 박스 스프링, 서랍장, 의자, 식탁, 솥과 냄비 그리고 캐런의 어머니가 아끼던 은그릇 세트까지 모두 차에서 내렸다. 에밀리는 그것들을 모두 새 거처에 들여놓았고 각 물건은 빈 건물을 아늑한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때 캐런은 램프가 생각났다. ‘에밀리와 척이 그 램프를 써도 좋겠지? 그래, 그럴 거야.’ 하지만 자신이 기꺼이 램프를 내줄 수 있을지 캐런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엄마가 아끼던 물건이었다. 손님들에게 만져 보게 했던, 오래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가 자신을 위해 직접 구입한 전등이었다.
‘이건 챙겨 둬야겠어.’라고 캐런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
차에서 캐런은 에밀리에게 램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불을 켜는지, 어머니가 손님들에게 가벼운 터치로 램프 켜는 법을 알려 주면서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를 조심스레 설명했다. 에밀리는 장난감 가게에서 완벽하지만 가질 수 없는 인형을 본 소녀처럼 놀라워했다.
“남편이 빈 픽업트럭을 돌려 먼지 나는 흙길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제 차로 갔어요.” 캐런이 회상했다. “에밀리도 함께 있었는데 기쁨에 겨워 연신 고맙다면서 받은 물건 하나하나를 말하며 성의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다고 했어요. 듣고는 있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온통 터치 램프 생각뿐이었어요.”
“아니에요.” 캐런은 에밀리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빚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 물건들 덕에 당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면 엄마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두 여인은 다시 함께 울었고 에밀리는 트럭 기사 특유의 방식으로 캐런을 힘껏 끌어안았다.
캐런은 최악의 밤을 보냈다. 터치 램프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잠이 들었다 하면 하나님께서 그녀를 깨워 에밀리가 그 램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일깨우셨다. 날이 밝았고 캐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터치 램프는 캐런의 것이 아니라 에밀리의 몫이어야 했다.
아침 식사 후 캐런은 다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에밀리의 집으로 향했다.
“침실에 둘 물건을 하나 더 가져왔어요.” 에밀리가 문을 열자마자 캐런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정말 기막힌 물건인데 보여 줄게요.”
두 여인은 척과 에밀리의 새 침대 곁 엄마의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 방으로 향했다. 캐런은 플러그를 꽂은 뒤 테이블 위에 램프를 올려놓았다. 에밀리는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살짝 건드려 봐요.” 캐런이 말했다. 에밀리가 도자기를 건드리자 환한 불빛이 켜지면서 눈물 그득한 그녀의 눈을 비추었다. 둘은 함께 램프를 여러 번 건드렸다. 불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에밀리가 눈물을 닦고 캐런의 손을 잡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채고 똑같은 물건을 선물로 주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예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캐런, 당신은 알았고 마음에 담아 두었고 그것을 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