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안식일 오후가 되면, 우리는 긴 그림자를 밟으며 메이블의 집을 방문하곤 했다.
그녀는 혼자 살기에는 큰 집에 홀로 거하면서 2월의 한기를 화목난로의 온기가 덮어 주는 아래층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의자, 가장 좋아하는 숄, 책들이 쌓여 있는 테이블과 함께 그녀 옆에는 항상 성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늘 이야기꽃이 폈다. 오래전의 전도회 이야기, 흥미진진한 성경 연구 이야기, 인내와 끈기로 신앙을 회복한 가정 이야기 등. 40년 넘게 메이블은 작은 합회에서 성경 교사로 일하면서 겨울에는 눈보라를, 여름이면 습한 열기를 헤치면서 공중 전도회로 지역을 누볐다.
그러나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형제들’은 그녀를 65세에 은퇴시켰다. 젊은 시절부터 일평생 해 오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고 그녀는 있고 싶어 했던 곳에서 320km가량 떨어진 오래되고 조용한 시골집으로 갔다. 거기서 안식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집에서는 포틀럭을 베풀고, 봄철에 길이 진흙투성이가 되면 전화로 교인들에게 알리는 등 인근 교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정원 가꾸기나 자동차로 관심 주제가 바뀌었을 법한 순간에도 그녀의 마음은 늘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넘쳤다. 남은 세월 동안 메이블은 낡은 닷지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 자동차가 제 역할을 가장 잘하는 때는 320km 떨어진 장막 부흥회에 그녀를 데려갈 때였다. 거기서 메이블은 2주 동안 자원봉사자로서 자신이 전도한 수십 명, 수백 명을 다시 만났다. 그 기간에는 정원에 열매가 맺히지 않도록 작물까지 날짜를 계산해서 심을 정도였다. 또한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가정마다 아이들을 재림교회 교육 기관에 보내는지 확인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메이블의 사전에 파트타임 선교나 간헐적인 참여 같은 것은 없다.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의 눈은 빛났고 목이 멨다. 오래전 복음전도자 시절의 이야기를 전할 때나 험난한 세월을 견뎌 낼 때나 외로운 세월을 보낼 때도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주님께서 부르신 일에만 쏠려 있었다. 메이블의 일편단심은 아름답게 지독하다. 그 지독함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헌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다.
돕는 일이라면 모두 다 환영이지만 예수님이 마지막 때 백성에게 주신 사명을 수행하려면 남아도는 시간이나 힘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 사명은 다른 일로 정신이 없는 순간에도 헌신을 요구한다. ‘그리스도 정신’은 ‘이 정도면 좋다’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안에 안전하게 있는’ 99명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은혜가 마음속에 임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길을 찾고 기도하고 활동하면서 이곳저곳을 누비게 될 것이다.
메이블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는 선교 정신이 가득한 교회이다.
담대하게 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