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고 싶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교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예수님
자신이 속한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 가르는 이가 많다. ‘우리’란 보통 사회적·문화적·민족적 배경이 같으며 관심사는 물론 정치적·종교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즉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룹이다.
반면에 ‘그들’은 생김새, 생각, 언어가 다른 이들이다. ‘그들’과 주고받는 상호 작용은 제한적이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려는 성향은 타고난 것이며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인간 사회에 편 가르기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신다. 그분이 보시기에는 ‘우리’와 ‘그들’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조차 잘못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조건 없이 환영하시는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는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는 교회이다. 격하게 환영해 주시는 예수님의 면모를 보여 주는 특별한 이야기 하나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가장 인상적인 행동 중 하나는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다. 그 이야기는 복음서 세 곳에 소개되어 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맹인과 저는 자들이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마 21:12~15).
예수께서는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유대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 중 하나인 유월절이 시작되었다. 역사가들은 평소 3만 명이었던 예루살렘의 인구가 유월절 기간에 18만 명으로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1세기 유대인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이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도성 사람 대부분은 그분에 대해 거의 몰랐다. 예수님을 수행하던 갈릴리 사람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이상한 방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허다한 군중이 그분을 따르자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오셨다. 그분은 메시아였을까? 아니면 트러블메이커였을까?
여기서 나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직후에 행하신 일 때문에 도성과 종교 당국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분은 도성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인 성전으로 가셨고 그곳을 깨끗하게 하셨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은 달랑 건물 하나가 아니었다. 모리아산에 세운 그 복합 단지는 주랑현관(柱廊玄關), 성소를 둘러싼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중심을 차지한 성소로 이루어졌다.
신성시되는 구역의 전체 둘레는 1.6km에 달했다. 이곳은 유대교의 심장이었다. 야훼께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성전은 늘 의식적 순결을 유지해야 했다. 성전에 들이는 모든 것은 의식적으로 깨끗해야 했고,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정결해야 했다.
그런데 외관만 깨끗할 뿐이었다. 성전의 ‘심장’에 중대한 정화 작업이 필요했다. 성전은 부자의 배만 채우는 곳이 되었다. 성전의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제물은 성전 안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순도 높은 은으로 만든 성전 화폐만이 유일하게 통용되는 ‘깨끗한’ 돈이었다. 환전상들은 과도하게 환율을 적용해 예배자들을 속였다.
부패했고 야심에 이끌린 종교 지도자도 있었고, 자신의 ‘정결’과 성전의 의식적 ‘정결’에 열중한 나머지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들에 따르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제사장 거주 구역이었다.
정결 예식 후에 평범한 사람과 섞여서 불결해지는 일이 없도록 제사장들의 집에는 의식을 위한 욕조가 많았다. 제사장들은 자신의 구역과 성전을 이어 주는 사설 다리를 이용했다.
성전을 정결케 하면서 예수님은 이러한 종교 행사에 가담한 이들 모두에게 지극히 중요한 무언가를 일깨우고자 하셨다.
기록된바
예수께서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13절)라고 가장 먼저 말씀하셨다. 이사야 56장 7절을 인용하신 것이다. 이사야 원문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이다(막 11:17). 성전은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했다.
그러나 성소는 이방인에게 문을 닫았고 그들에게 지정된 뜰은 장터로 변했다. 사실 성소 주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석판이 있었는데 그 석판에는 이방인들은 처형당할 위험이 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성전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곳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은 이 사명을 망각했다.
예수님의 다음 행동은 더욱 충격적이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직후 그분은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나아오매 고쳐” 주셨다(마 21:14). 전통적으로 맹인과 저는 자들은 성전 경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들은 심각한 결함을 지녔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이 땅의 불완전한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고쳐 주신다. 그들이 성전에 들어오기 전에 고쳐 주신 게 아니라 성전 안에서 그들을 고쳐 주셨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세상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인식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가족이다. 우리는 모두를 맞아 주시고 품어 주시는 예수님의 동정 어린 손길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 환대하고 품어 주는 마음가짐은 우리 사이에 놓인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다. 전 세계적 감염병으로 생긴 장벽까지도. 우리가 인종적·정치적·종교적 경계를 극복할 때만, 오직 그럴 때만 그분을 따르는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고 그분처럼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길이 아니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올레그 코스튜크 21세기의 문제들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올레그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영향력에 관해 호프 채널에서 방영한 10부작 다큐멘터리 ‘레볼루셔너리(Revolutionary)’를 공동 제작했다. 그는 가정 전문 간호사 줄리아와 결혼했다.
발문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이 땅의 불완전한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고쳐 주신다.
12
내가 다니고 싶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교회
모두 환영합니다!
처음 왔을 때부터 편안한 교회라면 더 이상 따질 것도 없다.
영국에서 갑작스런 폭우를 만나 길을 헤맸다. 흠뻑 젖고 진흙투성이가 되어 조그만 게스트 하우스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는 기진맥진하고 참담한 심정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문이 열렸다.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내 여행 가방을 닦아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젊은 아가씨, 신경 쓰지 말아요. 여기선 아무리 엉망진창인 사람도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모두 이렇게 환영해 주니까요!” 내가 받은 최고의 환영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주 모든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여기처럼 따뜻하게 환영받는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하나님의 마음으로
진심 어린 환대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우리를 놀랍도록 사랑하시고 아무리 지저분해도 값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활짝 열려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삭개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 야곱의 우물가에 있던 여자, 나병 환자, 시끄럽고 성가신 아이처럼 온전치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 주셨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남을 대접한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바울은 설명한다(롬 15:7). 그는 나이, 성별, 인종, 지위, 옷차림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라고 말한다(롬 12:10,16).
장벽 허물기
사람들 대부분의 삶에는 장벽, 즉 타인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와 두려움이 존재한다. 나는 내성적이라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정말 힘들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마음을 먹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낯선 사람을 맞이해야만 한다.
여러분의 장벽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시편 103편을 읽으면서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나열해 보라. 그분의 사랑에 힘입어 타인에 대한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바뀌도록 힘쓰자. 그러면 예수님의 방식대로 새로운 사람을 여러분의 공동체로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다.
방문을 특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히 환영받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교인들에게 여러분의 생각을 전달하고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장 멋지게 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예수님이라면 교회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셨을지 생각해 보라.
방문객과 인사를 나눈 뒤 “오늘의 방문이 편안하고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라고 환영을 개인화시키라.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훈련받은 교인이 곁에서 예배 참석을 안내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요청을 귀담아듣고 최대한 들어 주라. 영하의 날씨에 벌벌 떨며 도착한다면 따뜻한 음료에 마음이 녹을 것이다. 아마도 방문객 전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일이나 간단한 건강식을 제공해 준다면 영적인 필요뿐 아니라 신체적인 필요까지 배려하는 교회라는 인상을 남겨 줄 것이다.
예배 순서에 대해 설명해 주라
매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하라. 늘 예배 인도자는 언제 일어서고 앉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알려 주고, 세족 예식과 성만찬 예식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순서를 예고도 없이 만난다면 방문객은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방문객이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겠다면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라.
아이들도 환영하라
예수님의 모본대로 어린이도 따뜻하게 환영하라. 예배 시간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것을 제공해 순서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라. 어린이의 마음을 얻으면 부모의 마음도 얻은 것이다.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울 수 있다. 어린 방문객을 맞이할 때는 예배 시간 동안 조용히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꾸러미를 제공하라.
가장 중요한 시험
매주 교회 문으로 들어오는 각 사람에게 두 가지 간단한 목표를 설정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자기를 사랑하시며 또 적어도 다른 한 명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각자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두 가지 핵심 원칙이다. 사람들이 사랑받고 환영받는다고 느끼고 있기에 그의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환영은 거부할 수가 없다. 교회에서, 일상에서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여러분을 통해 그 사랑이 흘러 들어가게 하자. 한 번 왔던 이들이 다시 와서 그 놀라운 사랑을 매주 거듭거듭 경험하고 싶게 하자.
캐런 홀퍼드 트랜스-유럽지회 가정봉사부장이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있었다.
2018년 7월, 우리는 미국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서 영국 세인트올번스로 이사했다. 새로운 집을 구하면서 지역 교회 여러 곳에 가 보았다. 몇 안식일에 걸쳐 참석했던 첫 교회는 아름다웠다. 안내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교회 문을 열어 주고 웃으며 주보를 건네주었다. 교인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음악 인도자들도 재능이 넘쳤다.
포틀럭 식사도 맛있었고 가지런했다. 여러 번 초대받아 어울리면서 참 즐거웠다.
런던에 있는 작은 교회도 가 보았다. 남편이 몇 차례 설교했던 곳이다. 안식일학교와 안식일 예배가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 남달랐다. 포틀럭은 맛있는 카리브해 음식이었고, 따뜻한 환영도 받았다. 그런데 갈 때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린다는 사실 때문에 가족과 함께 다닐 교회로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찾아갔던 교회는 주차 공간이 제한적이고 실내가 더웠다. 포틀럭은 잘 차렸지만 역시 공간이 협소하고 비좁아 무질서해 보였다.
이 마지막 교회에서는 안내자 몇 분이 남달리 특별했다. 그분들이 우리를 눈여겨보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우리를 건성으로 앞에 둔 채 우리 뒤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고, 우리 머리 너머로 다른 안내자들과 잡담하지도 않았다. 또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이름을 부르며 환영해 주었다. 안식일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이 교회에는 다정다감한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끔은 남편과 내가 안내 봉사를 맡아 무거운 교회 문을 열어 놓고 사람들의 이름을 적으며 방문객들이 안식일에 찾아온 사연을 기록한다.
안내 봉사자는 유능한 사람을 필요 적절한 사역에 연결시켜 주는 중개인 역할도 한다는 것을 나는 확인했다.
교회에서 다정한 얼굴로 따뜻하게 환영하는 일은 손해될 게 없다.
샤론 테니슨 『애드벤티스트 월드』 유통 코디네이터다.
내가 다니고 싶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교회
1킬로미터 안내자
마이클 L. 라이언
전 대총회 부회장
대회가 소유한 파란색 닷선 픽업트럭의 차 바닥은 녹이 슬어 구멍이 숭숭 뚫렸고 그리로 흙먼지가 올라왔다. 수도의 비포장도로의 웅덩이를 덜컹거리며 지나자 머플러가 아우성거린다.
이 나라의 남부 지방을 파괴시킨 잔혹한 대학살에서 지하 재림교회 세 곳이 살아남았다. UN의 평화 협정으로 교회 지도부에서는 나에게 복음 전파 계획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이 절망스러웠지만 예수께서 여기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하려고 애썼다.
교인 42명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교회 12곳, 아드라 사무실 그리고 FM 라디오 방송국이 실현되기를 바랐다. 마지막 날 오후 그들이 던졌던 날카로운 질문을 잊을 수가 없다. “목사님, 맞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합니까?”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자라길 원하고, 재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주님을 위해 일을 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말이죠.”
1년 4개월이 지난 뒤, 나는 대회 사무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교회 14곳을 세워 수도 안의 교회는 총 17곳이 되었다. 아드라는 복도 바로 아래의 사무실을 차지했다. 수도 내 유일한 FM 라디오 방송국인 재림교회 라디오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기독교 음악이 내 귀에 들려왔다.
모든 일이 기적이었다. 대회장은 말했다. “간단합니다. 일하고 기도한 결과입니다. 그게 다예요. 일하고 기도하고.” 기쁨에 찬 대회장은 내게 도시 전 교회가 참석한 장막 부흥회에서 안식일에 새로운 교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안식일 아침, 나는 호텔에서 장막 부흥회 행사장까지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인파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에 종이 한 장씩을 재빨리 건네주고 있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는 재단사나 정비공 아니면 이발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게도 종이를 건네주었지만 나는 종이를 읽을 수도 읽을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글자 사이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로고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혹시 재림교인이세요?” 내가 물었다.
“네, 두 달 전부터요.” 그가 대답했다.
장막 부흥회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그는 서툰 영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 재림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가 대답했다. “저는 1킬로미터 안내자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7명이 이 일을 하고 있죠.”
나는 재빨리 지역 교회 선거위원회 기록을 검토해 보았다. 장로, 집사, 안식일학교 교사, 재무, 패스파인더 리더, 지역 사회 봉사 리더 등 기타 여러 직분을 추천한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1킬로미터 안내자라는 직분은 없었다.
그날 아침, 나는 1,200여 재림 성도 앞에 서서 물었다. “혹시 1킬로미터 안내자의 초대를 받아 이 자리에 처음으로 나오신 분이 있다면 일어서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28명이 일어났다.
교회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창의성을 추구하며 자문해 보자. ‘1킬로미터 안내자’처럼 우리 교회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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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독자의 소리
우리가 돌아오는 이유
올해 초 『애드벤티스트 월드』에서는 소셜 미디어 팔로워들에게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 교회에서 환대받는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라고 물었다.
세계 각지에서 답장을 받았고,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 편집실
교인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 줍니다. 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가족처럼 대해 줍니다. – 필리핀에서 샤얀
제가 다니고 싶은 교회는 “행복한 안식일입니다.”라는 인사에 그치지 않고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교회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일상에 대해 묻거나 일주일 동안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요. 제가 맛본 실패, 고통,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안정을 느낍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각자의 상황들을 확인합니다. – 미국에서 에스더
교회 덕분에 저는 영적·정서적·관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청년회에 처음 왔을 때의 제가 아닙니다. 저의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께서 저를 덜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분은 과거에도 그러하셨듯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는 삶의 모든 것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 미국 플로리다에서 제니퍼
우리 교회에는 다정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분이 많습니다. 포옹하거나 악수하는 분도 있지요. 마치 우리가 대가족의 일원처럼 느껴져요. – 미국 오하이오에서 마샤
저희는 모든 방언을 수용하기 위해 3가지 다른 언어로 찬미를 부릅니다. 작은 예배당은 항상 가득 찹니다. 소니 재림교회에서 제가 얻은 기쁨과 축복 외에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케냐 미고리에서 아스트리드
우리의 선교 사명은 ‘예수님과 연결되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사람들을 예수님과 연결시키자.’입니다. 우리는 교인들에게 초점을 맞출 뿐 아니라 방문객을 환영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관심사, 연령, 교인, 비교인을 위해 다양한 사역을 진행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복음 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 미국 오리건에서 마이클린
제가 다녔던 교회마다 저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고 교적을 옮겨 오겠다고 하기도 전에 안식일학교나 가르치는 일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따뜻하고 반갑게 맞아 주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사람들과 인사를 건네고, 슬픔을 알아차리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을 보듬어 주고, 재정 문제를 돕는 것이지요. 우리는 최대한 서로의 짐을 덜어 주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어딘가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 미국에서 케이
교인들과 손님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대접받는지를 보면서 저는 반가움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희는 인종, 성별, 나이, 교육 수준, 경제적 지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든, 누구를 사랑하든, 이곳은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 미국 메릴랜드에서 캐시
저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5살 때, 이웃의 재림교인이 우리 형제를 성경학교에 초대했습니다. 우리 옷차림은 허름했지만 선생님들은 정말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패스파인더 노래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노래를 가르쳐 주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자존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필리핀에서 니 레
제가 아는 한, 버지니아비치 재림교회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친절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새로 오는 손님들과 교인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개선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또 친교의 식사 및 다가오는 행사에 초대하고 환영의 선물을 줍니다. – 미국 버지니아에서 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제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나님이 하시듯 제가 늘 가족, 친구, 교우들을 완벽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 또 어둠 속에서는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필요하죠. 우리를 있는 그대로 환영해 주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학생반이 예수님의 사랑을 키워 주고 저를 환영해 주는 곳임을 발견했습니다. – 미국 플로리다에서 로만
마음이 상했다면 저희 교회로 오십시오. 저희 교인들은 그런 여러분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여러분을 챙겨 드립니다. 저는 교회 가족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제 삶에 큰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 남아프리카에서 테레사
저는 따뜻한 미소에서, 마음을 담은 악수와 포옹에서 그리고 교회 식구들과 떨어져 그들이 몹시 보고 싶을 때 제가 환영받고 있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 미국 미시간에서 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