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다이빙
빌 노트
바람이 많이 부는 높은 언덕에 낡은 헛간 한 채가 있었다. 가축들이 거의 1년 내내 눈과 추위에서 보호받는 곳, 곡식과 먹이를 저장해 두는 곳, 가난한 농가 살림에 필요한 낡은 장비들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해마다 7월이면 눈부신 몇 주 동안 그 낡은 헛간은 형제들과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겨울을 대비해 새로 베어 낸 건초 더미의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거기서 신나게 뒹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건초 더미에서 위험한 것들을 제거해 주시면 우리는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대들보로 올라가 수북이 쌓인 새 건초 더미를 내려다보며 가장 푹신푹신한 곳으로 뛰어내렸다.
적어도 나의 형제들은 그랬다. 다들 몸이 유연하고 운동 신경이 좋아서 짚단과 토끼풀 더미로 양팔을 펴고 우아하게 다이빙하는 모습이 예술에 가까웠다. 나도 질세라 방금 본 모습대로 대들보에서 뛰어내렸다.
‘철퍼덕!’ 어색한 폼으로 회전하여 떨어지면서 무릎이 턱을 쳤다. 향기로운 건초 더미에 주저앉아 나는 턱을 문질렀고, 아파서 그리고 자존심이 상해서 흐르는 눈물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동작을 조절하고 기울기를 계산하고 팔을 펼쳐도 뛰어내릴 때마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다리를 타고 대들보 위에 올라 완벽한 착지를 위해 정신을 집중한 다음 또다시 ‘철퍼덕!’ 이번에는 되겠다 싶지만 그럴수록 건초 위에는 눈물이 더 뚝뚝 떨어졌다.
살면서 겪는 경험마다 교훈이 담겨 있다.
건초 더미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끈기를 배웠다. 뉴잉글랜드의 선조들은 ‘처음에 안 되면 다시 하고 또 하라!’는 경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다시 하고 또 했다.
거듭되는 경착륙(硬着陸)과 반복되는 고통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심히 두려워하는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어이 닥칠 일 앞에서 우리는 움츠러들고 만다. ‘피할 수 없는’ 실패, 요청에 대해 반복되는 ‘거절’, 주어진 역할을 해내거나 참다운 행복을 얻기에는 여리고 서툴다는 평판들 앞에서 말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입은 상처들의 합계이며 우리 귀에 대고 쉰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인다. ‘괜한 고생하지 말고 소박한 꿈에 만족하라고.’
그러나 하나님과 사랑으로 맺어진 마음에는 이런 속삭임이 들려온다.
‘올라가서 다시 한번 해 봐. 여러 번 떨어져 보아야 마침내 날아오를 수 있어.’ 우리 각자, 기도반, 교회 전체, 복음 사역, 실로 세계적인 마지막 운동에 참여한 모두가 하늘의 응원가를 들어야만 한다. 그 응원을 듣고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며 하늘만이 줄 수 있는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다시 한번 사다리를 오르자.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는 용감한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