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나
그래서 그냥 넘어가자고?
인종 갈등에 맞서는 우리의 역할은 달라질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인종 차별 문제로 씨름하듯 사도행전 6장의 초대 교회 신자들 사이에도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에 1차적인 분열이 있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었으니 그냥 넘어 갑시다.”라고 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문제의 본질을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무너진 곳 보수하기
성경에 따르면 모든 분열의 근원은 사탄이다. 죄는 분열을 초래한다. 이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만을 가르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열매를 먹고 나서 곧바로 비난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 모두가 화해의 사절단이라고 하신다(고후 5:18~20). 그분은 자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회복하는 일을 맡기려고 우리를 택하셨다. 화해의 사역과 관련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하리라”(사 58:12). 이것을 현재의 인종 갈등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상대를 확실하게 세워 주라
초대 교회에 제자들의 수가 늘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생겼다(행 6:1). 그래서 열두 제자는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 일곱 명을 택하여 “이 일을 맡기고” 냉대받는 이들을 보살피게 했다(3절).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가?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헬라파 과부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제자들은 헬라어 사용자를 모집했다. 실제로 사무 전체를 그리스인들이 맡았다. 아람어 사용자 중에는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일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 그 외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동체 속에서 그리스어 사용자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조치를 취했다. 공정한 식량 분배를 보장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지도자로 세운 것이다.
적극적인 역할
“나는 벽을 깨뜨린 적도 없고 헐어 버린 적도 없어. 길에 구덩이 하나 판 적도 없다고. 이런 것은 훨씬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긴 일이야.”라고 우리는 말할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의 결과는 평생이 지나도록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하나님은 상기시키신다. 인종 차별이 형성된 지는 수 세기가 지났다. 미국의 경우 초기 개척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이미 인종 차별이 심각했다. 무너뜨리는 일에 손끝 하나 댄 적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회복해야 할 의무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나쁘지 않은 것 그 이상
하나님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악을 중단할 뿐 아니라 선을 행해야 한다고 선지자는 말했다(사 1:16~17).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구원받은 양 무리를 염소와 구분하실 때 왼편에 있던 이들은 가난한 자를 공격하거나 주린 자를 배고프게 내몰거나 헐벗은 자를 조롱했다고 고발당한 게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시어 우리가 주변의 불의를 목도할 수 있기를,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어 우리가 봉사할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너진 곳을 보수하자.
로이드 시저 미국 뉴욕 트로이에 있는 조이 오브 트로이 재림교회의 평신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