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마르코스 파세그히, 『애드벤티스트 월드』
피가 흐를 것이다
코로나19를 면했다고 그 결과까지 면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아시리!”
전투 중에 사망한 무명용사의 묘비에 흔히 쓰이는 이 비문은 2020년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의 공식 기록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공공과 민간 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실제 사망자 수 추산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1
현재 전 세계 곳곳의 감염자 중에는 재림교인 수천 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림교인 수백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코로나19에 감염되었거나 사망한 친척 또는 지인이 있다는 재림교인이 많으므로 갈수록 맹위를 떨치는 이 전염병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재앙에서 벗어나면
레위기 14장은 자신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는 나환자들이 따라야 할 세부 사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를 가져오게 하고”(2~4절).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제사장이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라고 명령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5절). 이어 “[제사장이]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아야 한다고 덧붙인다(6~7절).
기독교 주석가 대부분은 그 의식에 직접적인 메시아 상징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죄 없는 새가 피를 흘리고, 그 피와 흐르는 깨끗한 물을 앞서 병들었던 사람에게 뿌리면 그는 정하다는 선고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된다.
피에 적시기
그런가 하면 다른 주석가들은 그 의식의 인간적인 요소들을 강조한다. 겉보기에 똑같아 보이는 두 마리 새 중에서 어떤 새가 죽고 살지를 제사장이 선택한다. 선택된 새를 잡은 뒤, 제사장은 살아 있는 새를 “잡은 새의 피에”(6절)에 적신 다음 “살아 있는 새는 들판으로 날려 보낸다”(7절).
풀려난 새가 자신의 날개에 다른 새의 피가 묻은 채 날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심지어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새의 피 무게와 끈적거림 때문에 하늘을 날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 새는 힘겹게 뒤뚱거리며 어리둥절한 채 들판을 가로질렀을 것이다.
그때 우연히 그 새와 마주쳤을 두 사람의 대화를 상상해 보라. “저 새는 피를 흘리고 있어! 죽어 가고 있는 건가?” 상대방은 새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 대답할 것이다. “아니, 새는 죽어 가고 있는 게 아니야. 피를 흘리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이야!”
우리에게 묻은 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리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사태를 면한다고 해도 그렇지 못했던 이들의 괴로움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곁에 머문다. 레위기에 나오는 피에 적셔진 새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섭리 안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거나 장기적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형제자매들의 흔적을 지닌 채로 살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쓰러진 형제들을 하나님께서만 아시도록 하지 않는 것이 산 자의 의무이다. 우리는 피의 흔적에서 자유로워져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대신해서 걸어가야 한다. 함께 코로나19를 이기며 생명 넘치는 삶으로.
1www.ctvnews.ca/health/coronavirus/why-the-exact-death-toll-for-covid-19-may-never-be-known-1.4881619
2www.adventistreview.org/church-news/story15171-275-adventists-have-died-from-covid-19-in-southern-mex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