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시키는 혁신
빌 노트
“최고의 헌신이란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강사는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대학생 150여 명의 표정을 살피려고 잠시 강의를 멈췄다. 그런 다음 강조하는 의미로 그 말을 다시 천천히 반복했다. “최고의 헌신이란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헌신적인 삶을 지속하려는 수년간의 노력과는 다른 방향으로 헌신이라는 진리에 접근하고자 애쓰는 그의 말에 우리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신앙심 많은 19, 20, 21세 대학생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매일의 순간을 대부분 실험이나 혁신의 기회로 여기지 않는다. 우주의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에는 반드시 정형화된 틀, 규칙적인 반복, 일관성 등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가령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간절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성경을 펴서 묵상하고 읽은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로 마치는 식이다.
강사가 말하는 새로운 발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이 제시한 도전적인 표현을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신앙생활은 빤히 예상되는 판에 박힌 형태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그는 상기시켰다. 흔히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질이 아니라 시간이다. 1시간 혹은 30분 동안 했으면 목표를 채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의력이 무궁무진하신 하나님, 인간 두뇌라는 복잡하고 섬세한 작품을 창조하셨으며 자신이 만든 뉴런을 각별히 여기시는 하나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열정을 발휘해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과 만나고자 할 때이다. 규칙적인 반복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탕자와 그의 형 모두와 함께 활기차고 역동적인 관계, 즉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 새로운 힘, 성장의 기회가 움트게 하는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루터처럼 우리는 계단을 기어오르는 의식을 행하다가 은혜의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 존 웨슬리처럼 우리도 가눌 수 없이 넓고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가슴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엘렌 화잇처럼 우리는 종종 그녀가 표현한 “체험적인 신앙”을 실천할 수도 있다. “남의 말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맛을 느껴야 한다. 경험이란 시도에서 비롯한 지식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체험적인 신앙이 필요하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주님께서는 주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십니까?”라고 신실한 마음으로 떠올리는 신성한 호기심에 대해 주님께서 답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라고 여기는 질문을 그분은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이다.
욥기, 시편, 애가 등 성경에서 하나님과 친한 이들이 믿음의 질문을 던졌던 사실로 미루어 물음표(?) 역시 느낌표(!) 못지않게 충분히 믿음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강렬해질 때마다, 경건함과 예배라는 더 깊은 삶을 순간순간 추구할 때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일상에는 새로운 활력이 샘솟는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기발하고 새로운 이번 달 『애드벤티스트 월드』를 읽으면서 예수님과 갈수록 새롭고 활기찬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신실한 실험에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라.
*Ellen G. White, 『God’s Amazing Grace』(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3), p.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