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공포에서
경외심으로
어렸을 때는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눈앞으로 뭉툭한 손가락을 갖다 대면, 아주 잠깐 동안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이 사라졌다.
우리가 웃으면 방에 모여 있는 어른들이 분주하게 주고받던 대화를 모두 멈추고 함께 떠들썩하게 웃고 또 웃었다.
우리가 울면 사람들이 달려와 우리를 붙잡아 주고, 씻겨 주고, 다독이고, 먹이느라 세상의 일상이 모두 멈춘 듯이 보였다.
잃어버린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해 기도하면 대개는 집으로 돌아왔다. 복음을 전하러 떠난 이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은 우리의 기도 응답을 입증할 만한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신의 행동과 주변의 사건들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문제없이 잘 지낼 때는 태양이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성내고, 무례하고, 이기적일 때는 상황이 갈수록 더 악화되었다.
자전거나 자동차가 금요일 오후에 고장 난 이유는 안식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불화가 생긴 이유는 고백하지 못한 죄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란 현명하고 바람직하게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는 곳이었다. 법을 지키지 않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나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에서 이 점은 우리도, 나도 마찬가지임을 배웠다. 그래서 헛간에 불이 나고 손목이 부러지는 일이 생기면 이것은 어쨌든 우리가 불순해졌거나 그릇된 선택을 했다는 하늘의 신호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리 내면의 그 무엇이 원인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없는, 매우 어마어마하고 전 세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국가 경제가 부채에 허덕이고, 통화 가치가 하락한다. 정의가 있어야 할 곳에 부패가 자리 잡고,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은 거꾸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집에서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유전이 테러 공격을 당하면 갑자기 나의 자동차 연료 탱크를 채우기가 어려워진다.
산불이 나고 빙산이 녹는다. 허리케인과 태풍은 광활한 대양을 가로질러 가장 처참해질 곳을 목표 지점으로 삼는 듯이 보인다. 산호초가 죽고, 수많은 종이 사라진다. 해안 도시를 환하게 밝히는 고층 건물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맥을 못 춘다.
무서운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의로운 사람, 무신경한 사람, 신실한 사람, 무신론자의 목숨을 빼앗는다. 나이, 건강, 재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아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도 상관없으십니까?”
우리가 저지른 어떤 일이나 결정보다 더 크고 어두운 세력이 그 원인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21세기의 일상에 존재하는 폭풍우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지치고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가라앉는 배에 매달려 있는 제자들처럼,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구조를 기다린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배의 뒤쪽에는 우리가 신뢰해야 한다고 배웠던 바로 그분이 순수한 믿음을 지닌 채 태연하게 주무시고 있다.
이쯤에서 성인 남녀라면 화를 낼 만하다. 위기의 순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필요하다는 것이 흔한 ‘신념’이기 때문이다. “전원 갑판으로!”라는 해군의 모토는 가용 자원과 선원 모두가 동원되어야 하는 재난이 생길 때 적용된다. ‘최소한 예수님도 우리와 함께 배에 고인 물 정도는 퍼내셔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우리는 투덜거린다. 그분께서는 노를 젓거나 부러진 돛대를 잡고 계셔야 했다. 우리의 삶에 비상이 걸리면 그분에게도 비상이 걸려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분은 주무시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식하고 계신다. 배의 한구석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 안에서 말이다. 그분께서 사람들을 먹이고 치유하고 맹인을 다시 보게 하는 수천 가지의 꿈을 꾸고 계시는 동안, 우리의 무력감과 극심한 공포는 신랄한 분노로 바뀌고 마음에만 담고 있던 말을 급기야 내지른다. “우리가 죽어도 정말 상관없으십니까?”
“예수님, 저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이제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합니까?” “이웃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떻게 복구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아내, 남편이 지금 병원에 누워 호흡도 어렵고 의사소통도 할 수 없습니다.”
공포감에서 비롯한 질문이지만 매우 시급해 보인다. 이 순간의 신념은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또 하나의 비성경적 견해)와 유사해 보인다. 위기에 대한 해답은 우리 수중에 있는 수단들에 달려 있다고 우리는 고집한다. 뒤집히려는 배를 바로잡고, 물을 퍼내고, 노걸이에 노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쉬시다가 일어나 물이 차오르는 배에 서서 바람과 파도에게 명하시는 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순수한 믿음으로 주무셨던 그분의 손안에 전지전능함이 있음을 우리는 헤아리지 못한다. 그분의 대답은 침몰하고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우리가 가장 치명적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 세력들을 그분께서 휘어잡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이 비천한 자리에 머물고 계시는 순간에도 파도와 바람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그분의 음성을 알아듣는다.”1 폭풍이 아무리 거세도 이것이 우리의 운명을 침범할 가장 큰 폭풍이 아님을 그분은 알고 계신다.
“사나운 물결이 뛰놀며
또 험악한 원수가 일어나되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엎어 놓을 능력이 없도다”2
그분께서 만들어 놓으신 고요와 순식간에 진정된 배를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물결은 골짜기에서 기습적으로 불어닥친 폭풍만큼이나 놀랍다. 움츠러든 근육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긴장은 점차 가라앉고 이제 고결한 두려움 아니 경외심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또 다른 아둔한 제자가 또 다른 배의 밑바닥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했을 때의 그 경외심이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자신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기 때문이 아니고, 나쁜 행동으로 큰 폭풍을 초래해서도 아니다.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아니 긴박한 상황에서는 더욱 특별히 우리가 참으로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배의 축축한 밑바닥에서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열두 제자와 함께하셨던 그분께서는 더 많은 질병과 폭풍으로 겁박하는 세상의 파도 속에서 뱃머리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여러분의 배 밑바닥에 똑같이 머물고 계신다.
여전히 실업자들이 생기고 애완동물이 사라진다. 가옥과 지역 사회를 복구하는 일은 하나같이 어렵고 더디다. 그리고 깨어진 관계는 겸손과 사랑에 발걸음을 맞추어야만 회복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숨을 내쉬거나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곳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여전히 큰 슬픔에 잠길 것이다. 그러나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결코 떠나지 않는 분, 우리가 재난을 당할 때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 주님의 분명한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휘몰아치는 파도와 험악한 구름에 맞서 우리를 자기의 영원한 항구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제 우리는 높은 폭풍우도, 깊은 바다도, 현재의 위기도, 다가올 위기도, 단축된 삶도, 지연된 죽음도, 창조된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라는 확신을 얻는다(롬 8:39).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6~18).
1 Katharina von Schlegel, tr. Jane Borthwick, “Be Still, My Soul”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85), 461
2 M. A, Baker, “구주여 풍파가 일어”, 『찬미가』 735장
빌 노트 『애드벤티스트 월드』 편집국장이다.
발문
11
나이, 건강, 재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12
순수한 믿음으로 주무셨던 그분의 손안에 전지전능함이 있음을 우리는 헤아리지 못한다.
13
우리의 삶에 비상이 걸리면 그분에게도 비상이 걸려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