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는가
죽음과 부활
사탄은 말한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사탄은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유일한 안내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사실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지침, 사탄의 수정 진술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소개하실 때 자신의 넉넉함이 드러나면서도 모두에게 해당되고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선언을 하셨다. 그 선언에는 선택권이 분명히 제시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너는 살 수도 있고,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는 선택권이다.
삶을 제시한다는 사탄의 수정 진술은 하나님과 완전히 대립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이 수정 진술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사탄은 신뢰할 만한 정보원이 되는 셈인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꾀하는 것이다. 영원히 산다는 개념은 사탄이 처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를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믿게끔 유도하는 것이 사탄의 목표다. 하나님과 똑같이 자기도 생명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자신의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보다 훨씬 나을 뿐 아니라 고민할 필요 없이 선택해도 될 만큼 훨씬 신축성 있다는 것이다. 열매, 돈, 섹스, 권력, 물질,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로 취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사탄은 무덤 저편의 가능성을 과다하게 제시한다. 물론 무덤은 몸이 썩는 장소이긴 하지만 또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면서 그는 말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맥박이 끊어지면 몸속에 있는 불멸의 자아가 자유롭게 날아오른다.’라거나 ‘자아는 업보에 따라서 고등 동물이나 하등 생물의 형태로 끝없이 새롭게 된다.’라거나 ‘지상에서 저지른 악에 비례해 연옥의 불로 고통 당하고 마침내는 정화되어 영광의 경지에 오른다.’라거나 ‘이 땅에서 악하게 살면 영원한 불의 운명을 맞는다.’라거나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의 영과 접촉할 수 있다.’라는 식의 제안이다. 사탄의 바람은 자신이 진리의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 여겨지고 위의 가르침들을 우리가 영원한 삶의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탄의 넘치는 제안이 끌리는 이유는 내용의 다양성 때문이 아니라 그 제안들이 하나같이 생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생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정작 문제는 영생이 가능하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이다.
독자들은 ‘가라사대’ 게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라사대’라고 말한 뒤에 내려지는 지시만 따라야 하는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가라사대’이다. 아무리 지시 사항이 합리적이어도 ‘가라사대’라는 말이 없이 내려지는 지시는 누구도 따라서는 안 된다. ‘가라사대’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만 중요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교회에 전달된 것이 아닌 권고를 우리가 모두 쳐내면서 사탄의 말을 영영 따르지 않게 보호하시려는 것이다.
레이얼 시저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