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하나님의 계획인가 나의 계획인가?
조마조마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사람들이 계속 방해했다. 내 책상으로 가는데 동료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동료가 떠는 수다를 점잖게 들어 주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마감이 임박한 글 한 편을 구상하고 있었다. 마침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문서를 열자마자 휴대폰이 윙윙거리더니 급한 문자가 왔다.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 친구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을까?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한숨을 지었지만 내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날 하루 할 일이 많아서 아침에 기도도 서둘러 끝냈다. 분명 하나님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어차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닌가?
‘천천히 해.’ 짜증이 나는 와중에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관통했다. ‘너의 계획이 이렇게 차질을 빚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봐.’ 이 말에 수긍하면서 나는 컴퓨터를 닫고 전화기를 들었다. 힘겨워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성경 구절 두 개가 머릿속에서 퍼뜩 떠올랐다. 그 구절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35:40)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였다. 놀라운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의도하신 바가 내가 하기로 계획한 일을 초월한 것이라면? 그 순간 하나님께서 원하신 바가 내가 그분과 함께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그럴 때 과연 하나님을 믿고 내 시간을 바치게 될까?
나는 관계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힘겨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과 관계 사이에 균형을 잡아 주셨다. 너무 바빠서 그분과 또 그분께서 내 일상에 끼워 두신 사람들과 함께할 겨를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분은 일깨워 주신다. 내가 세운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 시간과 일을 내주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시도록 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예수님의 모본을 생각해 본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아버지와 함께하셨다(마 14:23; 막 1:35; 눅 5:15~16 참조). 누가 봐도 명백한 일상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은혜와 사랑으로 대응하셨다. 예를 들어 야이로의 죽어 가는 딸을 살리러 가시던 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피 흘리는 여인을 치유하시고 그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려 하시다가도 자기를 쫓아오는 군중에게 다정하게 가르침을 베푸셨다(막 5:21~43; 6:30~34).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날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계획을 보여 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삶에서 단순히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우리 길을 그분께 맡기면 그분께서 우리 발걸음을 이끄신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날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께서 펼치시는 계획을 살피는 것이다. 내가 세운 계획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싶지 않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분의 끼어들기를 반기며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가끔은 내가 계획한 일의 목록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치료봉사』, 479
리넷 올콕 서던 재림교회 대학을 졸업했고 영국 왓퍼드에 살고 있다.
발문
너무 바빠서 그분과 또 그분께서 내 일상에 끼워 두신 사람들과 함께할 겨를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분은 일깨워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