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오솔길
불확실한 시대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상황이 나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동기 부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실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편 113편 3절에서는 도움이 될 만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이 구절에서 얻는 한 가지 깨달음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시편의 유형 이해하기
시편 113편 3절을 논하기에 앞서 시편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사실을 정리해 보면 도움이 된다. (1) 성경 학자들은 시편을 유형 또는 영역별로 구분한다. (2)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최소 다섯 가지 유형으로 시편이 분류된다는 데 동의한다. 찬양의 시(할렐), 지혜의 시, 왕의 시, 감사의 시, 슬픔의 시이다.1
찬양의 시(할렐)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보다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해 찬양하도록 신자들을 격려한다. 찬양 시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함, 선하심, 공의, 심판, 지혜로 인해 찬양받으신다. 시편 113~118편은 일반적으로 ‘할렐’로 분류된다.
지혜의 시는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을 규정한다. 예를 들어 시편 14편은 지혜로운 자를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2절)로 정의한다.
왕의 시는 “하늘에 계신 이”(시 2:4)이신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한다. 그분께서 다스리시니 “권위를 입으셨도다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보다 크나이다”(시 93:1~4). 왕의 시는 또한 이스라엘 왕들의 역할을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고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는 것(시 72:2~4)이라고 강조한다.
감사의 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 시편은 신도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고하거나 시편 기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감사의 주제 부분은 시편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감사 시편의 대표적인 예가 시편 136편이다.
슬픔의 시는 특히 절망의 순간에 구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국가와 개인의 고통으로 인한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 인간의 고통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개입을 간구한다. 애도 시편은 고통에서 나오는 기도이다(예 시 12:1~2; 13:3~4; 22장).
언제 어디서나
시편 113편은 찬양의 시에 속하므로 하나님의 근본 속성을 탐구하면 그분을 찬양하라는 3절의 표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라는 구절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이 구절은 단지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쪽(해가 뜨는 곳)을 아우르고 서쪽(해가 지는 곳)까지 도달하는 찬양의 지리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해가 뜨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그러나 이 구절이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는 해석 또한 성경적으로 옳다. 창조 당시, 자주 반복되는 표현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는 24시간 주기를 의미한다. 해는 밤으로부터 낮을 분리하며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 짓게 한다(창 1:14).
그러므로 시편 113편 3절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세상 곳곳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 말지는 장소나 형편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한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뻐하기 쉽다. 그러나 상황이 뒤바뀌면 기뻐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지는데 그래도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다.
찬송을 믿음의 행위로 간주하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권면을 언제나 실천할 수 있다. 여호사밧왕의 경험과 같이 말이다. “여호사밧이 인솔하던 이스라엘의 군대는 찬양의 노래와 함께 전진하여 큰 구원을 받았다. …군대의 앞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약속된 승리에 대해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면서 전진하였다. …그 뒤 나흘째 되던 날, 이스라엘 군대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2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야훼와 그분의 품성을 존중하고 드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신뢰와 순종, 기쁨의 영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그분의 신실함을 기억하는 것도 포함한다.
삶이 하나님의 의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삶의 형편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 즉 어려운 상황을 예감할 때에도 확신을 보여 줄 수 있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할 때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된다.
찬양은 단순한 행위 그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곳의 분위기여야 한다. 찬송은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엘렌 화잇은 “찬양의 선율은 하늘의 분위기이다. 하늘이 땅과 접촉할 때 음악과 노래가 있다.”3라고 진술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길들여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의 심령을 길들여서 소망을 지니고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거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 왕의 자녀들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아들과 딸임을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께 말없이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4
나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엘렌 화잇의 진술을 좋아한다. “그대들은 흑암에 빠질지라도 그분을 찬송하라. 시험 중에서도 그분을 찬양하라.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한다.”5
1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Steven J. Lawson, Holman Old Testament Commentary—Psalms 1-75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03), p. 5
2 엘렌 G. 화잇, 『교육』 163
3 앞의 책, 16
4 엘렌 G. 화잇, 『치료봉사』 253
5 엘렌 G. 화잇, 『교회증언』 593
톰 오갈 동-중앙아프리카지회 행정부총무이며 케냐 나이로비 근처에 살고 있다.
발문
찬송을 믿음의 행위로 간주하면,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권면을 언제나 실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