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일구다
1971년 프랑스 선교사 앙리 켐프가 오트블타에 갔을 때, 나라 전체에 재림교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에겐 낯선 일도 아니었다. 몇 년 전 그와 가족은 토고의 국경 마을에서 재림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아주 흥미진진한 경험입니다.” 켐프 목사가 말했다. “하지만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알려진 오트블타의 사역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24년 뒤 글로벌 미션이 설립되었을 때는 재림교인이 28명, 예배소는 두 곳뿐이었다.
오늘날에는 교회 12곳과 예배소 65곳, 안수목사 5명, 신자 2,358명이 있다. 재림교회 학교는 10곳이며 치과도 한 곳 있다. 교회는 풍족하지 않지만 살아 있고 성장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기꺼이 말하는 사람들을 성령께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자원하는 심령
그중 한 명이 토고에서 온 재림청년 마티유 쿨레트로 나는 그를 25년 전에 만났다. 부두교를 신봉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령 신앙을 하는 가족 출신이지만, 마티유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했다. 자신이 시작한 새로운 신자들의 모임을 소개할 때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마티유 쿨레트와 가족은 부르키나파소에서 10년 동안 봉사했다. 12가지 새로운 모임을 시작했고 그중 여럿은 큰 교회가 되었다. 각 장소에서 섬길 때마다 그는 성경을 들고 다가가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애쓰며 그 사람들의 문화를 살폈다.
새로운 모임 중 한 곳에서 작은 아이 하나가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다. 자라면서 그 소년은 자신의 가족을 재림교회로 인도했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카메룬에 있는 코센데 재림교회 학교에 갔다. 현재 그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켐프 목사와 쿨레트 목사가 세운 토대 위에서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마티유는 쿠두구에 교회를 개척했다. 거기에는 발레리라는 새 신자가 있는데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매 안식일 그 여인은 뜨거운 아프리카의 뙤약볕 아래 3시간을 걸어 교회에 찾아왔고 다시 3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복음을 전했던 마티유 쿨레트는 현재 베냉의 코토누에서 베냉대회의 총무로 봉사하고 있다.
*Henri Kempf, “In the Homeland of the Voodoo Cult,” Missions Quarterly 56, no. 2 (1967): 4, 8
게리 크라우제 대총회 선교부장이다. 마티유 쿨레트의 인터뷰 영상은 다음 사이트에서 시청할 수 있다. https://m360.tv/i23041
캡션
마티유 쿨레트(서 있는 사람)와 그의 가족은 부르키나파소에서 12가지 새로운 재림교회 모임을 시작했다.
안식일마다 발레리는 6시간 동안 목발을 사용해 걸어서 교회에 다닌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