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실꾸리고둥
딕 더크슨
카리브해의 섬 푸에르토리코에서 어느 무더운 안식일을 보낼 때였다. 교회를 다녀와 땅콩버터-젤리 샌드위치를 먹고 엄마는 여행 채비를 하였다. 마야궤스 언덕의 벨라 비스타 병원에 있는 집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가량 가야 하는, 길지 않은 여행이었다. 이제 엄마가 꿈꾸는 안식일 오후를 함께 즐길 참이었다. 이사벨라의 어촌 근처 조수 웅덩이(바위 사이의 작은 웅덩이)에 가서 진귀한 실꾸리고둥을 찾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엄마는 그곳을 정말 사랑했다. 해변의 경계를 이루며 길게 늘어선 코코야자 나무들, 종종 폭풍에 쓸려 온 조개껍데기들이 모래를 덮고 있는 작은 만(灣), 바다와 맞서 장엄하게 싸워 온 검은 절벽, 거기 있는 모든 것이 엄마에게는 특별했다. 신비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엄마가 좋아하는 곳은 철썩이는 파도 쪽으로 돌출된 뾰족한 용암층이었다. 엄마가 라틴어 학명을 부르는 ‘에피토니움 스칼라레’, 즉 소중한 실꾸리고둥이 있는 곳이다. “큰 땅콩만 하고, 흔하지 않으며, 섬세하고, 순백색이며, 매우 정교하고, 값비싸다.”
교사가 책을 사랑하듯 엄마는 고둥을 사랑하는 조개껍데기 전문 수집가다. 엄마의 보물들은 굵은 활자체의 라틴 이름으로 일렬로 분류되어 있고 라틴 이름 밑에 소문자로 이름을 적어 놓았다.
엄마의 실꾸리고둥들은 따로 특별한 플라스틱 상자에 보관하여 재봉틀 곁에 두었다. 엄마의 애장품이다.
***
아빠는 안식일 오후 맡은 책임이 있어서 엄마는 나와 동생 잭 그리고 간호사 지니를 불러 모아 낡은 스테이션왜건을 끌고 이사벨라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달렸다. 그런 다음 흙먼지 이는 길을 타고 코코넛 농장을 지나 바닷가의 작은 길에 다다랐다.
“조심해야 해.” 엄마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썰물에 용암층이 드러나서 칼보다 더 날카로우니까 다들 운동화를 신고 파도도 잘 지켜봐.”
엄마는 조심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우리는 바위와 파도에 대한 엄마의 경고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귀한 실꾸리고둥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절벽 아래 튀어나온 바위 지층이다. 멀리서 보면 이 웅덩이들은 바다 바로 위에 있는 잔잔한 평면거울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착해 보면 마치 달 표면을 걷는 것 같다. 수 세기에 걸쳐 파도가 부드러운 바위를 때려 용암 칼 백만 개를 지닌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실꾸리고둥은 이 용암 웅덩이에 산다. 희귀하고 섬세하며 정교한 이 연체동물은 흔히 물 깊은 곳에서 말미잘, 작은 조개어류를 포함해먹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공격한다. 전에도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상처 난 발과 코코넛 몇 개가 전부였다. 우리 모두 오늘은 지난번보다는 더 낫기를 바랐다.
간호사 지니는 이사벨라가 처음이라 마음이 들떠 있었다. 엄마 옆에 착 붙어서 파도를 경계하며 실꾸리고둥을 찾아 물로 가득한 웅덩이를 살펴보았다.
몇 초 간격으로 엄마는 우리를 쳐다보며 경고의 음성을 날렸고 허리를 구부려 다른 웅덩이를 살펴보았다.
“파도를 조심해!”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 잘못하면 바위에 다리를 다칠 수가 있으니까.” “밀물이 밀려오고 있어. 파도를 조심해!”
엄마보다 고둥을 먼저 찾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웃으며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
파도가 점점 커졌다. 어떤 파도는 바다 깊은 곳에서 올라와 용암 지층을 쓸고 내려가며 작은 조수 웅덩이들에 물을 보충해 주었다.
실꾸리고둥을 처음 찾은 것은 동생 잭이었다. 불가사리와 말미잘 사이에 박혀 있던 작은 놈이었다. 다음은 엄마 차례였다. 더 크고 밝은 하얀색의 완벽한 놈을 찾았다. 엄마는 완전히 마음이 팔려 찾은 보물을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지르다 넘어질 뻔했다.
사방으로 퍼져 본격적으로 조수 웅덩이에 머리를 숙이고 고둥을 찾느라 그만 파도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모두가 정신을 팔고 있는 그때 큰 파도가 밀려왔다. 누군가 ‘잠자는 파도’라고 부르는 바로 그 파도였다. 대서양 해구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커져 은밀하게 다가오는 이 괴물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점점 높아져 사람의 키보다 커진 파도는 고둥을 찾는 사람을 잡아채고도 남는다.
그 큰 파도가 그만 간호사 지니를 낚아챘다. 우리 모두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파도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지니는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져 조수 웅덩이 끄트머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니는 위를 쳐다보고 비명을 지르며 조개 바구니를 내던졌지만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니는 팔을 휘저으며 헤엄치려 했지만 파도를 이기지 못했다.
“빨리! 기도하자! 서둘러!”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잭과 나는 재빨리 엄마에게로 달렸고 차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지니는 계속 수영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빨리!” 엄마가 소리쳤다. “차에 타. 이사벨라로 가자. 지니를 꺼내 줄 어부를 찾도록 기도해. 제발, 주님, 지니를 지켜 주세요. 제발요! 제발!”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처럼 엄마가 빠르게 운전한 적은 없었다.
이사벨라 선창에는 어부가 한 사람도 없었지만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구하자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여러 명이 보트를 향해 달리며 구조 팀을 조직했다. 어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배에 타라고 손짓했다. 간호사 지니가 있는 곳을 그 어부가 바로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는 기도했다.
우리가 탄 배가 탁 트인 바다로 방향을 틀었을 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배 한 척을 만났다. 우리를 보자 그 배의 선장은 뱃고동을 울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 어부 옆에는 담요 여러 장으로 몸을 칭칭 감싸고 정신없이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간호사 지니였다. 살아 있었다. 안전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어요!” 승리의 합창처럼 울리는 뱃고동 소리 너머로 지니가 외쳤다.
이사벨라에서 돌아오는 내내 지니는 추워서 이를 덜덜 떨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들려주고 또 들려주는 지니의 이야기를 잭과 나는 귀담아들었다.
“물속으로 빠져 가면서도 저는 기도했어요. 이전에 기도했던 것보다 더 열렬하게 기도했어요. 하나님께서 저 멀리 파도 가운데서도 들으셨어요. 그리고 저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