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안에서 잘 지내는 법
빌 노트
글 읽기를 배우기 오래전부터 나는 하늘에 나무가 있다고 안식일학교에서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하늘에 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볼 때 자라나는 것들 중에서 나무는 가장 호의적이다. 꽃처럼 여리지도 않고 형제들처럼 변덕스럽지도 않다. 지독하게 무더운 오후에 나무는 시원하고 푸른 그늘이 되어 준다. 소나기로 놀이터가 흠뻑 젖을 때는 피난처가 되어 준다.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조용한 장소를 제공해 준다. 땅딸막한 내 몸을 겨우 떠받쳐 주는 가지 위로 신나게 기어올라 나무와 함께 흔들흔들하며 바람을 쐬기도 했다.
두 세기 전 이미 사라진 농부들이 뉴잉글랜드의 작은 길에 심어 놓은 거대한 단풍나무 사이로 나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자기 손주들이 또 손주의 손주들이 봄에 솟아오르는 수액과 여름의 푸른 그늘과 가을의 눈부신 주황빛으로 즐거워할 모습을 농부들은 내다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할 미래에 투자했고 그것으로 족했다.
신앙 안에 커 가면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백성을 활력 넘치는 나무에 비유한 것은 지당하다고 느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시 1:3). 그처럼 풍성하고 물 댄 동산 같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커다란 유칼리나무가 화재에 맞서듯 그들은 시련과 고통을 견뎠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매일 성령을 들이마시며 그들은 회복을 선사하는 신선한 샘을 찾아냈다. 암에 걸렸어도 용감했고, 주변 사람 모두가 힘들어할 때도 믿음을 지녔다. 폭도들이 몽둥이를 들고 있어도 친절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회복력이 있었다. 이 땅에서도 하늘의 품격을 갖추고 사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침착함과 우아함을 보면서 나는 부활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자들이 늘 다급하게 서두르는 사람들만은 아님을 새삼 떠올렸다. 그저 성장하여 피난처가 되어 주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평화(빌 4:7)가 필요한 이들에게 성소를 제공해 주면 그만인 경우도 있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의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 92:13~14).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치명적 재앙에 맞서 세상이 씨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 힘든 시간에 우리를 이끌어 줄 강하고 물 댄 동산 같은 이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믿음, 그들의 열매, 말씀 안에 뻗어 내린 그들의 깊은 뿌리야말로 언젠가 생명나무 아래 거할 자들의 특성이다(계 22:2).
보좌에서 시작한 냇물이 지나가는 치유의 나무 아래 언젠가 우리가 거하게 될 때까지 회복력 있는 삶을 살겠다고 오늘 결심하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