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이야기 속으로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가?
멀리서 보면 그 광경은 좀 혼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한쪽은 테이블 주변에서 페이스트리와 덤플링(만두)을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밀가루가 묻은 때깔 좋은 앞치마를 입고 양념한 채소와 쌀을 찌고 있는 솥을 오가며 끓고 있는 완두콩과 감자스튜를 젓고 있고, 메인 요리(비법 재료는 주방 이모만 알고 있는)가 든 오븐을 슬쩍슬쩍 쳐다보는 한 무리의 여성들의 모습이 말이다.
꿀을 뿌려 반짝이며 끓고 있는 신선한 과일들은 식히기 위해 선반으로 옮겨지고, 찬장은 스튜에 매운맛을 더하기 위해 여닫힌다. 대팻밥처럼 얇게 자른 코코넛을 한 줄 넣은 페이스트리에 살짝 뿌리는 설탕, 제대로 재빨리 튀겨 낸 양파의 자글거리는 소리. 주방은 웃음과 주고받는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누구도 자기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 가지 대화가 한꺼번에 계속 이어지는데 저마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적절히 대답도 하면서 기분 좋은 말을 건넨다.
어릴 적에 나는 준비된 요리마다 이야기가 몇 조각 들어 있거나 관찰, 통찰, 농담, 심오한 사상 심지어 충고의 말이 맛있게 버무려져 있다고 상상했다. 상이 차려지고 식사 기도가 끝나면, 낱말 하나하나가 온전히 나를 위해 구워지고, 준비되고, 차려진 것 같은 그 이야기들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맛있는 이야기의 향연이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이야기는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1 이야기는 사적이고 깊은 수준의 소통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거기서 공감과 이해가 일어나고, 가늘고 끊어지기 쉬운 감정과 이성의 선들이 인간미와 만나며,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개인적으로 공유된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2 이야기는 갈라진 관계의 틈을 이어 주고, 학습 곡선을 단축시켜 준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남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귀중한 교훈을 모으기도 한다. 그 어린 시절 이야기의 향연을 회상해 본다.
영감
일요일 아침, 나는 새로운 친구 에린을 환영하는 브런치 식사를 준비했다. 친구들이 주방에서 이야기하며 웃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함께 나눈 이야기들과 신앙의 여정, 인생에서 감정의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 우리가 지닌 의미 있고,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서로서로 상기시켜 주었으니 이 친구들은 내게 가족이다.
우리는 이 식사를 함께 준비했다. 에린의 어머니 신디는 6주 전에 별세했다. 무남독녀였던 에린은 마을에 남아서 그녀의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들을 견뎌 내고 있었다. 내 친구들과 나는 모두 작년에 고통스럽게 긴 병을 앓고 있는 신디를 보살피고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에린과 신디는 10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신디의 소원을 위해 그 모임의 목사로서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그 전화’를 거는 임무를 맡았다. 때로 길을 잃고 낯선 환경에 있을 때, 슬픔이 문을 두드리고 그 모든 것이 밀려 들어온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정확히 기억되는 그런 전화를 말이다.
나는 준비된 에린의 자리 옆에 삼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 우리가 함께 지키기로 했던 약속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에린을 일제히 환영해 주었고, 이어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에린은 도착하자마자 주방으로 휙 들어가 할 일을 받고는 이내 계속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에린의 침울한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었을 때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분이 요청하신 대로 함께하는 것.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신앙 여정과 감정의 연대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시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가장 놀라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음식을 차리고 감사 기도를 드린 뒤 그 삼나무 상자가 열렸고 에린은 여섯 가지 요리 레시피가 적힌 카드를 천천히 꺼냈다. 자신이 요리를 거들었던 음식들이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만든 것임을 그는 알아차렸다. 레시피 카드 아래에는 신디가 어린 아기 에린을 안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말없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가 이걸 남겨 주신 거예요? 저를 위해서?” 에린은 식탁 주변에 있는 엄마를 돌봐 준 이들, 간호사들, 물리치료사 그리고 원목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그저 친구들인 그들을. 여섯 가지 음식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딸에 대해 신디가 들려준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에린에게 말해 주었다. 에린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간절하고 진솔하게 구하며 창조주의 발 앞에 내려놓았던 신디의 아름다운 기도도 상기시켜 주었다. “엄마가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고요?” 에린이 속삭이듯 물었다. 나눌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침묵은 무겁고 짧았지만 이야기의 교훈이 우리를 감쌌다. 그렇게 이야기들은 시작되었다. 슬픔의 눈물을 대신한 에린을 위한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던 기억의 만찬. 신디는 식사를 위한 레시피 이상을 남겨 주었다. 그녀는 에린에게 감정에서 논리로 이어지는 가는 실보다 훨씬 두꺼운 끈, 기도와 영혼을 위한 영적 양식을 남긴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통해 10년이란 갈라진 관계의 틈을 이어 주는 다리가 놓인 셈이다. 웃음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에린을 위해 준비되고, 요리되고, 차려진 진짜 말의 만찬은 아낌없이 베풀어질 것이다.
1 Joseph Campbell,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3rd ed.(Novato, Calif.: New World Library, 2008), pp. 25~29
2 Ibid.
딕실 L. 로드리게스 대학 교수, 병원 원목으로 봉사했고 미국 오하이오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