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청진기로 하나님 찾기
삶, 신앙, 평화, 의미의 점선을 이어 가며
바람직하게도 재림교회는 의료 선교 사역을 강조한다. 예수님도 위대한 의사였고 그분의 치료 사역은 영혼 구원의 필수 요소였다. 확실히 복음 진리와 결합한 의료 선교로 수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의학은 기성 신자의 믿음도 굳세게 해 준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교회처럼 병원도 종종 하나님의 임재로 거룩해진다. 또 인간의 몸은 비록 죄로 망가졌어도 ‘하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초기 의료 경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적은 아니지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두 가지 사건이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사건과 그와 비슷한 다른 사건들을 떠올리면 믿음이 더욱 강해진다. – 외과의사
깨달음의 순간
첫 번째는 레지던트 기간 끝 무렵의 일이다. 외과 의사 팀의 일원으로 나는 목에 뿌리를 내리고 식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악성 종양을 지닌 40세 남자의 수술을 도왔다. 흔하지 않은 수술이었다. 이미 화학방사선요법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완강히 버티고 있어서 수술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전에 병원을 찾아왔을 때부터 나는 그를 알았다. 병세에도 불구하고 그때 우리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과정을 잘 견뎌 온 용감한 분이었다.
수술 과정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먼저 후두, 인두, 식도를 제거하고 가슴을 통해 위를 끌어올려 음식을 삼킬 수 있도록 목의 남아 있는 부분과 봉합을 해야 했다.
비어 있는 위를 폐와 심장 뒤로 살짝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목까지 이동시키는 데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위를 달래며 교대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과 폐로 우리가 움직이는 팔의 압력이 가해지면 맥박과 산소 수치가 곤두박질치듯 떨어져, 주요 장기가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해 수술을 멈춰야 했다.
수술 중 또 멈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당시의 일을 나는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환자의 복강으로 미끄러운 위를 움직이게 한 뒤, 주요 장기가 회복할 시간을 주는 동안 나는 손을 환자의 가슴에 얹어서 부드럽게 뛰는 심장을 쥐었다. 그러자 심장이 놀라운 힘으로 뛰면서 수축을 시작했다. 그 경이적인 순간에 우리 사이에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았다. 갑자기 이상한 친밀감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이 몰려왔다. 그때의 느낌을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한다.
두경부 외과의인 나에게 심장은 좀처럼 직접 볼 수 없는 장기이다. 그러나 내가 신비한 경외감에 빠진 이유는 생명의 강력한 상징인 심장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술하고 있는, 살아 있는 이 멋진 장치가 한 인간의 삶을 대표하고 있다는 단순한 그 사실 때문이었다.
슬픔이 새겨진 얼굴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경외감에 숨이 멎기만 하는 게 아니다. 방식이 사뭇 다르지만 비극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내가 본과 3학년일 때였다. 늦은 밤에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병원 외상 구역의 형광등 아래에서였다. 삶과 죽음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접하는 생경함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느껴질 때여서 더 깊은 인상으로 각인되었다.
엄마와 다섯 자녀가 타고 있던 차 한 대가 전복된 사고의 외상 보고를 받았다.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의무적으로 세부 사항을 적었고, 자신들이 겪은 온갖 혼돈 속에서 들것에 실려 유리문을 통과해 들어올 사고 부상자들을 기다렸다. 도착한 순간 재빨리 각 환자의 외상평가를 위한 ABCDE 실행 팀을 나눴다. 기도 유지(Airway), 호흡(Breath), 혈액(Circulation), 신경 장애 검사(Disorder), 의복 제거(Exposure)를 의미하는 이것은 생명을 구할 때 중요한 사항을 쉽게 기억하는 방법이지만 내가 맡은 아이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9살인 소녀는 통통하고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리 폐쇄 부상이었고 단 한 방울의 혈흔도 없었다. 나는 그 아이가 앉아서 웃어 주기를 반쯤 기대했지만, 우리가 번갈아 수를 세며 압박을 가하는 동안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들썩하는 것이 아이의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라인을 배치하고, 심장 충격을 가하고, 약을 최대한 투입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내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한 부모 가정의 엄마가 졸린 아이들을 수요 기도 모임에서 집으로 데려오던 중 미니밴이 전복되는 사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이 죽었고, 한 명은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한 명은 몇 군데 골절이 있었다. 엄마는 의료상의 검사로 보아서는 적어도 아무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가슴이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이튿날 아침, 회진 도중 그녀가 있는 병실 앞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멈춰 섰다.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눈물이 마른 공허한 눈으로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온통 슬픔 그 자체였다. 그녀가 바라보는 창밖 세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세상이 아닐 것이다. 엄마의 고통은 마치 온 세상을 삼킬 만큼 끝도 없는 바다처럼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얼굴이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의사로서 오랜 시간 이런 순간을 많이 겪었다. 경외, 고통 그리고 수많은 다른 감정이 각각의 순간들을 물들인다. 무신론자에게는 이러한 사건들이 자연의 무관심한 법칙의 부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 영혼의 방에 울리는 그분의 발걸음 소리다.
삶의 신비
교리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 각자는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지닌 한정된 정보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다. 의료업에 종사하면 그 정보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 우리가 배워 왔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은 깊게 가려진 신비로 남아 있다. 생리학, 생화학 기타 다른 학문들의 미스터리를 넘어 생명 그 자체의 미스터리가 있다. 생명은 맨 처음에 어떻게 점화되었을까?
현대 과학계의 많은 분야에서는 진화가 모든 생명체의 배후에 있는 원동력이자 생명의 위대한 수여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신체 그리고 거기 깃든 마음, 영혼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한다. 방사선, 독, 격렬한 불, 극도의 추위로 가득한 적대적인 우주에서 화학 물질의 수프가 스스로 생겼고 영겁의 시간이 흐르면서 엄청나게 복잡해졌다고 주장한다.
나는 속세를 떠난 신학자도 아니고 연구실의 과학자도 아니다. 나보다 더 대단한 이들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옹호할 수 없다. 오직 나의 경험으로만 말할 수 있다. 외과 의사로서 나는 생명을 안다. 나는 생명의 흔들리는 나약함을 느껴 왔고, 그 복잡성에 경외심을 느꼈고, 그 소멸을 슬퍼했다. 과학적 진보는 눈부시지만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생명을 창조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다.
의미 찾기
가장 통제된 실험실에서 모든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우리는 가장 단순한 유기체조차 만들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없다. 그날 응급실에서 피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던 그 어린 소녀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생명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갔다. 수술실에서 내가 쥐고 있던 그 심장의 힘찬 박동은 영락없는 신의 행위이다.
생명은 내게 믿음을 선사했고 결국 나의 믿음은 평화의 위대한 원천이 되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고 그것이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더하기에 얻는 평화이다.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고통을 허락하시냐는 것이다. 의학은 내게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고 가르쳐 준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 가운데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우주에서 어떻게 혐의를 제기하며 어떻게 산산조각이 난 어머니의 마음에 대해 항의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우주에서 어머니의 고통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그 고통은 존재라는 냉혹한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그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것이 틀렸다고 외칠 수밖에 없다. 신이 존재할 때만 이 세상의 잘못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계셔야만 그 어떤 것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만이 만족할 만한 답을 제공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슬픔, 기쁨, 사랑은 실제로 그 이름의 목적을 달성하고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나 동시에 의미를 외치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우리가 하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외친다. 이외에도 우리 각자는 마음속 깊이 우리가 영위하는 삶에 책임이 있음을 인지한다. 도덕법은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다.
의료계에 몸담고 있으면 이러한 현실을 자주 마주한다. 의학은 실제로 복음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실재를 분명히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지난 수년에 걸쳐 배웠듯이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티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과 경험은 이 모든 것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자신의 손안에 붙들고 계신다고 나는 믿는다.
토슨 호건 두경부외과 의사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