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행
by 크리셀 크레이그
“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신 분
생명을 희생하셨네
나 자유를 얻고 나 온전해졌네
이제 내가 아는 것을 모두에게 전하리
나를 구원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신 주님”
(앤서니 브라운과 그룹 세러피, ‘가치’)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여자는 명망 있는 남자와 혼외 관계 중 발각된다. 남의 사생활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침입해 들어온 이들의 모습에 그녀는 얼마나 놀랐을까? 자신의 모습을 가리느라 애쓰며, 왜 자신이 소동을 일으키는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지 생각하며, 얼굴에 번지는 고통스러운 당혹감을 띤 그 여자의 모습을 그려 보라. 남자들에 둘러싸여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쪽으로 비켜서는 남자들, 자신의 몸을 감추려 애쓰며 먼지 구덩이 속에 자신의 발꿈치를 파묻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다시 움직이는 사람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자신이 내몰린 여행의 종착지가 자기를 환영하지도 않는 교회였다는 것이 의아하다. 이곳은 오래전에 이미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 버린 곳이다. 이곳까지 그녀를 끌고 온 사람들은 사나운 눈과 잔인한 호기심으로 소리치고 조롱한다. 갑자기 그 여자는 쓰러진 땅바닥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아챈다. 옆에 있는 누군가는 자기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 눈에는 연민이 어려 있다. 그가 자기 옆에서 흙바닥에 쓰고 있는 글자를 그 여자는 읽을 수 없다. 그는 일어서서 몰려오는 군중에게 말씀하시고 다시 무릎 꿇었던 자리로 돌아간다. 모여 있던 남자들이 하나둘 떠나자 그녀의 심장박동도 몸을 가눌 만큼 느려진다. 한 남자와 그 여자만 남았지만 불안함은 없다. 그가 그녀를 향해 돌아서서 말한다. “당신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나도 당신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 여자는 얼마나 놀랐을까!
개인적인 소견
이 여인이 여러분의 딸, 엄마, 누이, 친구라면 어떨지 생각해 보라.
냉소적인 얄팍함이 유행인 세상에서 예수님 같은 친구는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그 보살핌으로 회복을 경험케 하는 분이다. 예수님은 종종 온화한 분으로 묘사되는데, 온화는 온후한 기질과 나약함을 떠올리게 하는 용어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요한복음 8장에서 가장 고결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이 구절을 자세히 살피며 관련된 남자들을 생각해 보자. ‘간음한 여자’를 성전에 데려와 심판하려는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녀를 무력하게 할 만큼 충분히 강했다는 것이다. 그녀와 관련된 남자의 위치는 어땠는가? 그녀가 심판받고 있는 똑같은 행동에 대한 대중의 조롱과 책망을 피할 만큼 충분히 높은 사람이었다. 그 여자의 삶에 있던 남자들은 그녀를 대적하여 음모를 꾸몄고 그녀를 저버렸고 멸시하고 그녀를 떠났다. ‘온유한 분’이신 예수님을 제외하고 말이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우리가 거의 인지하지 못한 방식으로 온유한 모습을 보여 주신다.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이야기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를 무시한 적대적인 남자들에 의해 한 여자가 성전의 신성한 뜰로 끌려왔다. 이 남자들은 하늘 아버지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신학적으로 구석에 몰아붙이려는 뻔뻔한 시도를 했다. 신성한 장소에 드려 마땅한 존경 대신 그들이 성전에 끌어들인 신성 모독과 모욕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이 휘청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중이 폭력을 선택한 그날, ‘온유한 분’ 예수는 땅바닥에 글을 쓰기로 선택하셨고 그것이 너무 강력하여 사람들은 논쟁의 여지도 없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 대해 연민을 보이시며 자신의 권위를 통하여 편견 없이 쓸 수 있었던 정당한 심판을 제어하고 계셨다. 우리를 전멸할 능력을 제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할 덕목이라고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자아에 약간의 흠집만 지닌 채 멀어져 갔다.
우리는 이 시나리오에 있는 온유한 분 예수께서 제시하신 또 다른 자비로운 선물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 여인은 그분의 비폭력적 견책으로 보호받았을 뿐 아니라 가치의 회복을 경험했다. 요한복음 8장 10~11절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 여인의 죄에 접근하는 그리스도의 시각은 겸손하고 긍정적이다. 그리스도에게는 그 여인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그녀 자신이 감당하도록 하는 권리와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인 스스로가 자신을 돌볼 책임감을 지니도록 그 여인에게 권한을 부여하기로 선택하셨다. 그녀에게 새로운 시작을 제안하신 것이다. 그 여인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스스로 성취하도록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녀를 위해 치른 신성의 희생과 연관시켜 그 여인을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시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종종 우리 스스로의 잘못으로 나쁜 상황에 갇혀 버린 그러나 그리스도에 의해 수고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 자신을 보도록 고무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서 보시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치르신 희생을 존중하는 것과 발맞추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으로 대할 때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추구함으로 우리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자기 가치감을 키우기 위한 실제적인 조언이 있다.
■ 우리 자신을 용서하고 수용하기
■ 사람들, 업적, 칭찬이 우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기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를 존중하는 반응 선택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의 상황을 선택하고 바꾸기
요한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죄의 굴레 너머의 삶을 탐구할 자유를 주심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시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분이 자신의 희생으로 이 기회를 사셨고 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그분 안에서 새로운 생명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분은 자신의 궁극적인 능력도 포기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기 가치를 깨닫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크리셀 크레이그 결혼과 가족치료 분야의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현재 미국 메릴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발문
그리스도에게는 그 여인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그녀 자신이 감당하도록 하는 권리와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인 스스로가 자신을 돌볼 책임을 지니도록 그 여인에게 권한을 부여하기로 선택하셨다. 그녀에게 새로운 시작을 제안하신 것이다.
*간음 현장 잡힌 여인을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를 요한복음 8장 1~11에 근거해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