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사랑 어린 호소
첫째 천사의 기별에 담긴 영원한 복음
일찍이 천사들은 베들레헴에 내려와 구주의 초림에 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였다(눅 2:8~11). 이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직전에 천사들이 다시 한번 영원한 복음이자 구원의 능력을 선포하고 있다. 사실 세 천사의 기별(계 14:6~12)에서는 복음이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영원한 복음이 첫 부분에 언급되어 있고(6절),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확신, 다시 말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확신이 언급되어 있다(12절). 첫째 천사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라는 맥락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둘째 천사는 바벨론의 거짓 복음의 붕괴 속에서 영원한 복음의 승리를 선포하며(8절), 셋째 천사는 최후의 심판을 선언한다. 그 심판 때에 악한 세력은 어린양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인정한다.
복음, 사랑, 쟁투
이 기별 전체에서 발견되는 복음에 대한 강조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선봉이 되어야 한다.”1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도전이다. 첫째 천사의 기별에 나타난 복음의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한 복음
복음은 영원하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롬 16:25~26; 골 1:26~27). 복음은 영원하다. 그것은 변경할 수 없으며 영속적인 구원의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 즉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부활(계 1:18), 승천(계 12:5), 대관식(계 4~5장), 하늘 중보 사역(계 8:3~4), 자기 백성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을 완결하기 위한 영광스런 재림(계 1:7; 14:10; 19:11; 22:20)을 아우르고 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계 1:5) 예수님께 요한이 영광을 돌리는 요한계시록의 시작 부분에 복음이 처음 등장한다. 모든 피조물의 이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그들을 위해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것은 사랑과 피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죗값을 치르려고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신 그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를 사랑하사”라는 표현에서 동사가 현재형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적으로 임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요한에 따르면 이 독특한 사랑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치른 희생적 죽음에서 나타났다(“우리를 해방하신”은 과거 시제임을 주목하라.). 피 흘려 희생하신 그 사랑으로 죄의 세력은 꺾였고 우리는 자유를 얻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어린양과 복음
어쨌든 요한계시록의 구원 메시지에 담긴 지배적인 모습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모습이다. 요한계시록에서 그의 첫 등장은 극적이고 강력하다. 하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만이 펼 수 있는 인봉된 책을 손에 들고 그의 위엄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 5:1~6). 천사는 그를 메시아적 칭호인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부르지만(5절) 요한이 그 사자를 보려고 돌아보았을 때 그는 “어린양이 서 있는데 죽임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6절). 복음이란 사자가 양 즉 희생양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 능력과 권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권세 즉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능력이다. 보좌 주위에 있는 자들이 어린양을 볼 때 그들은 그분께 경배하기 위해 엎드려 “합당하시도다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절)라는 찬양을 돌린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펼쳐 보이시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피와 구속의 두 가지 근본적인 개념을 동시에 발견한다.
요한계시록 7장 9~15절에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 서서 그분들을 찬양하고 섬길 준비를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서 있는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기 때문이다(14절). 어린양의 희생은 인간을 구속할 뿐 아니라 인간을 죄에서 깨끗게 한다.
사실 그것은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구속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섬길 수 있게 해 준다. 어린양의 희생적 죽음이 이 영광스러운 해방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용과 맞서 싸우는 우주적 쟁투에서 어린양과 함께할 수 있으며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길 수 있다(계 12:11). 이 과정 속에서 두 가지 요소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승리를 얻게 된 것 그리고 하나님이 어린양을 통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증언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은 영원한 복음의 체현이다.
복음과 쟁투
복음은 싸움 속에서 선포되었고 반역의 이야기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반역은 하늘에서 시작했고(계 12:7~8) 인류를 포로로 잡았다(창 3:1~8). 쟁투의 끝이 다가오자 용은 속임수와 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고자 한다(계 13:13~15). 그는 배도한 기독교를 통합하며(1~17절), 귀신적인 세 영의 메시지(강신술)를 이용해 땅의 왕들에게 지지를 받는다(계 16:13~14). 같은 시각, 하나님은 세 천사의 기별을 통해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자신의 마지막 백성을 모으시며(계 14:6~12)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하신다(14~20절). 이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는 오직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계 12:11).
결론
복음은 우주적 쟁투에 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 세 천사는 “진리를 받고, 권능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2 재림교회 기별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어린양의 피의 충만함을 선포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복음을 명확히 이해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이 우리 삶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 복음으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와 기관은 그분께 전적으로 헌신한 삶을 통해 어린양의 사랑을 드러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
1 『복음전도』, 188
2 『엘렌 G. 화잇의 주석』, 계 14:6~12
묵상을 위한 질문
1. 세 천사의 기별에서 왜 복음을 발견해야만 하는가?
2. 요한계시록의 심판 메시지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반대로 아니라면 그 이유는?
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과 복음을 세속적인 세상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