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기만이 아니다
빌 노트
어린 시절 처음으로 나의 상상 속에 자리 잡은 성경 이야기 중 하나는 전적으로 선교와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장; 막 4장; 눅 8장)가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구적인 의무를 멋지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치반 안식일학교 교과를 배우는 4살짜리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용감무쌍한 농부들이 온갖 토양에 씨앗을 흩뿌리는 모습을 내가 크레용을 움켜쥐고 색칠했던 것이 기억난다. 비옥한 갈색 흙, 싹트는 밀 잎사귀, 어떤 것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단단한 회색 땅, 곡식을 도둑질해 먹어 치우는 새들, 싹트는 씨앗을 밀어내는 무성한 엉겅퀴. 4살 꼬마에게도 이것은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였다. 뿌린 씨앗을 모두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육체적, 정신적 위협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 같은 그림을 색칠했던 수백만 재림교인처럼 나도 용감무쌍한 농부(저 모든 씨앗을 뿌리는 농부)라는 상상을 해 봤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이런 연결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아주 분명해 보였다. 뿌린 씨앗의 극히 일부에서만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겠지만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라는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 은혜를 힘입어 나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전 13:11). 씨앗을 뿌리는 영웅적인 임무에만 감정 이입을 하기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유용한 일이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교회 언저리에서 도둑질하는 새를 멀리 쫓아내도록 도우면서 이단과 광신도에게 미혹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새 교인이 현실에서 필요한 것을 다정하고 꾸준히 챙겨 주면서(결혼 생활, 양육, 건강 생활 지원 등) 돌무더기 땅을 깨뜨릴 수 있다. 엉겅퀴 즉 ‘이 세상 걱정’이 싹을 틔운 그리스도인에게 청지기 직분을 현명하고 인내심 있게 가르쳐 주면 조심스럽게 뿌리 뽑을 수 있다.
내가 배우게 된 선교는 단지 한 가지 즉 씨 뿌리는 일만이 아니다. 명확한 말씀 선포와 세심한 신자 양육이 짝을 이루고, 이어서 기존 신자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신앙 생태계가 구축되도록 돕는 것이 선교이다. “새가 그 사람들을 물어 가 버린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주택담보대출과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겨 주께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저버린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냉소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져 가는 행운아일 뿐 아니라 이 들판에 직접 나와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언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이 잘 자라도록 안전하고 비옥한 토양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추수의 하나님 즉 우리 마음에 씨앗을 뿌려 이 과정을 시작하신 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