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들
나의 자리를 찾아서
“하나님, 이곳이 분명 제가 있어야 할 곳인가요?” 유치원 수업으로 힘든 하루를 보낸 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좀처럼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내가 필요한 곳이면서 나에게 가장 알맞은 곳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리라 생각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재림교회 유아 어학원에 보내셔서 일곱 살짜리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셨다.
애를 먹이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어느 날은 모든 일이 꼬인 듯했다. 귀가 찢어질 듯하게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부려대는 아이가 있었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가서 울었다.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가르치고 양육할 수 있단 말인가? 다 내 능력 밖인 듯했다.
그런데 잠시 후 이러한 무기력감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지닌 기량이나 경험에 온전히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다. 새로운 기량을 배워야 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해야 했다. “맡은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주어라. 계속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돌봐라.”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듯싶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수월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당연히 어려움은 여전했다. 새로 들어간 공동체에서 자리를 잡아 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교실에서 예상치 못하게 증언할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특히 교실에서 ‘말썽꾸러기’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와 애정을 모두 다 받아먹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내내 내 속을 끓이던 아이가 “안아 주세요. 엄마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두 팔로 아이를 감싸자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선생님, 사탄이 조정해서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대답해 주었다. “항상 네가 선택할 수 있단다. 나쁜 일을 하라고 아무리 사탄이 꼬드겨도 네가 착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또 어느 날에는 여자아이 하나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가왔다. “아빠가 병원에 계세요. 그래서 무서워요.” 그냥 아이에게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말하는 대신 바로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아이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내가 간단히 기도를 드리는 동안 내 다리를 꼭 붙잡고 있다가 기도가 끝나자 안심한 듯 나를 꼭 껴안았다. 그런 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삶에 역사하고 계시며 나도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 한국에 온 지 8개월째이다. 여러 면에서 이곳이 정말 내가 있어야 할 최적의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면서 내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키워 주고 계셨다. 하나님께는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시면서 생각해 두신 계획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있어야 할 최적의 장소가 어디인지를 아신다. 그분께서 계획하신 최선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데 묶여서 오기도 한다. 힘든 날에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힘을 얻는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은 우리 속에 주님께서 계발시키고 싶은 소중한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내다보고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자신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뜻을 성취하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인도받기 원하는 길로만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어디로 인도하셨든지 간에 그분에게는 멋진 계획이 있다. 지금 여러분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를 계속해서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해 보자.
*Ellen G. White, The Faith I Live By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8), p. 64
리넷 올콕 한국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