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하루
세계 각 지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활약상을 보고했다.
숀 분스트라
의사 진행 발언이 종료됐다. 마이크 앞에 섰던 줄도 사라졌다. 화면에 줄줄이 보이던 규정에 관한 문구도, 가운뎃줄이 그어진 문장들도 자취를 감췄다. 위원회에 다시 회부할 것은 이미 회부되었고 지회장도 다 선출됐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 사업과 관련된 회의가 다 끝났다는 이야기다.
6월 10일 금요일 아침, 아메리카 돔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교회의 구체적인 안건을 처리하는 시간은 끝났고 교회가 하는 진정한 사업 즉 선교를 기념할 시간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 세계적인 운동의 선각자들이 잠시라도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꿈이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옛날 19세기에 몇 안 되는 몽상가들이 모여서 남은 교회의 탄생을 알렸다. 그 교회의 임무는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외치고 다녔다. 금요일에 소개된 이야기를 그들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교회(13개 지회와 직할 선교지) 활동을 보고하는 데 온종일 걸렸다. 아침 예배 직후에 북아메리카지회를 필두로 해 질 무렵의 남아시아태평양지회 보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백성의 활약상은 그날의 유일한 의제였다. 7년간 있었던 놀라운 선교 활동을 보고하도록 각 지회에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 좋은 소식을 빨리빨리 전해야 하다 보니 아드레날린이 약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 환상에서만 본 것 즉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기별이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는 모습을 지회 대표단들이 두 눈으로 목격하는 그 자리는 보고 듣는 축제가 되었다. 요한은 어쩌면 이 세상이 끝나 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금요일에 보았던 이들의 얼굴도 환상에서 보았던 것은 아닐까?
궁벽한 산지와 외딴섬의 사역자에게 세 천사 기별 전파란 고독하기 그지없는 일이겠지만 금요일의 선교 보고는 우리 중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우리 모두 상대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얼마 안 되는 재림교인들과 지내며 수고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각자는 시온의 어린양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어린양의 가슴은 천사들의 외침이 끝나고 왕국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대하며 한껏 부풀어 있다.
보고가 끝날 때마다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수만 명(심지어 수십만 명)이 침례를 받았다고 보고한 지회도 있었고,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사례 즉 사역이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애쓰는 재림교인들의 엄청난 희생이 소개되기도 했다. 불가능에 대해 말하면서 그날의 보고는 현재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용감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로켓포로 교회가 파괴되고 교인을 잃었지만 놀랍게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교회의 고무적인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다루어진 주제는 코로나였다. 세계 교회는 선교뿐 아니라 기존 전도 방법이 불가능해져 버린 세계적 위기에 직면해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사역을 계속해야 하는 난관을 해결하고자 똘똘 뭉쳤다.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디지털 선교사이다. 이 역할은 보통 청년들이 맡는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놀라운 독창성을 확인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이 전 세계적인 봉쇄를 돌파해 가도록 새로운 방법을 신속하게 찾아냈다. 그 결과 2015~20년에도 침례자가 나왔을 뿐 아니라 지난 2년 동안에도 믿을 수 없는 결실을 보았다.
참 적절했다. 총회 주간은 사명 선언으로 막을 열면서 이 기간에 우리는 신성한 일들을 다룰 것이며 모든 토의, 결정, 규정은 남은 교회의 사명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다루어져야 할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런 다음 교회 사업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약한 노력을 통해 이루신 일을 기념하면서 다시 남은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두었다.
이 세상에는 교회가 많지만 세 천사의 기별에 묘사된 모습과 맞아떨어지는 글로벌 운동은 하나밖에 없다. 요한이 밧모섬에 고립되었을 때 어쩌면 이날의 모습도 환상 속에서 잠깐 엿볼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요한 시대의 지중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다양한 인종, 언어, 억양, 문화를 말이다. 이것은 요한이 잠든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켜 가신다는 강력한 논증이다.
유리 바다에서 보고가 진행된다고 상상해 보자. 예수님이 재림하신 뒤 천국으로 올라가는 데 며칠씩 걸리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