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운데로 지날 때
카롤리나 라모스
지난 몇 달 동안 힘든 밤이 많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다. 우리가 계획하고 일어나기를 바랐던 변화도 있고, 예기치 않게 발생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변화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정신적으로 상처를 여러 번 겪다 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두가 살면서 최근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
이러한 사건이나 상실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이렇게 새로 변한 현실 때문에 무엇보다 악몽이나 플래시백(갑작스런 과거 회상) 등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증상이 생긴다. 이게 바로 우리 두뇌가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성경은 분노와 눈물, 두려움, 실망, 결점 때문에 하나님께 치유와 이해를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욥이나 요셉, 다윗, 엘리야,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 본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때때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 정상임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간구했다. 온갖 위기 속에서도 말이다. 즐거워 깡총깡총 뛸 상황이 아닌 때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들의 삶에서 배울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 골짜기를 다니는 나에게 용기가 된다.
얼마 전 교회에서 베데스다 못에 있던 중풍병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수님의 간단한 질문(“네가 낫고자 하느냐?”)과 그 중풍병자의 작은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치유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시간과 방식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 그래도 우리는 치유받을 수 있을까?
기적이 일어나 중풍병자는 다시 걷게 되었다.
반면 야곱의 이야기는 그와 다르다. 하나님과 가장 뜻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즉 가장 크게 영적으로 치유를 받는 순간에 야곱은 엉덩이를 크게 다친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피해 달아나고, 집을 잃고, 삼촌의 계략에 시달리고,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이제 오랫동안 피해 다녔던 모든 것과 다시 마주하러 가는 길이다.
고국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기가 무서웠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기억하고 있던 야곱이지만 되돌아가는 발걸음 내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그분께서 하신 약속을 잊지 않게 하셨다.
상처로 남은 일을 기억하기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 교인과 친구들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고 힘이 되는 말을 들으면 오래전 아주 힘든 날 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굳게 붙잡을 수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이사야 43장 2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지나간다면’이 아니라 “지날 때에”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야곱은 얍복강을 건넌 뒤에도 여전히 엉덩이가 아팠지만 그의 얼굴에는 평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 덕분에 내가 PTSD를 이해하고 헤쳐 나갈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성경 속의 이토록 아름답고 귀중한 일깨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외상 후 축복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우리가 모두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카롤리나 라모스 아르헨티나 리베르플라테 재림교회 대학에서 번역, 영어 교육, 음악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