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선지자의 이상한 행동
열왕기하 4장 34~35절에서 엘리사는 자기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 눈을 아이의 눈에, 자기 손을 아이의 손에 갖다 대어 한 아이를 살렸다.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
성경 본문은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본문에서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의 논리적 추론을 끌어낼 수 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다
본 이야기의 주요 초점은 하나님만이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선지자라 해도 그 자신에게는 생명을 베풀 능력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이러한 하나님의 독점적인 능력을 본 이야기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먼저 엘리사는 자기 종을 시켜 아이에게 가 그의 얼굴에 선지자의 임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자신의 지팡이를 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행동으로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질문에 언급된 엘리사의 특이한 행동으로 아이의 몸이 따뜻해졌지만 생명을 얻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기도
이 장면은 기도의 행동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엘리사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도한 이유는 기도 내용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그는 무릎을 꿇었다(히브리어로 ‘가하르’이며 ‘구부리다, 숙이다’라는 뜻. 왕상 18:42 참조). 또 바닥이 아니라 그 아이의 몸에 엎드린다. 이것은 원래 기도하는 자세 중 하나이며 그런 동작으로 우리는 생명의 주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먼지와 동일시한다. 자신이 아이를 살려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엘리사는 이 행동으로 자신을 죽은 아이와 동일시한다.
요청
그것이 기도였고 엘리사가 자신을 아이와 동일시했다면 선지자는 여호와께 무엇을 요청한 것일까? 그는 모세가 했던 대로(출 32:32) 아이의 죽음을 자신에게 전가하고 그 아이를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정말 선지자의 요청이었다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셈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이렇게 볼 수 있다. 자신을 아이와 동일시한 엘리사는 현재 살아 있는 존재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명을 아이도 얻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엘리사는 하나님께 아이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그 입이 열려 말하게 해 달라고, 몸 전체를 대표하는 팔에 활력이 생기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기도한 것이 맞다면 그 기도는 확실히 응답받은 셈이다. 여호와께서는 아이의 눈을 여셨고 숨을 쉬게 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다. 이런 해석이 본문의 의도를 의문의 여지 없이 정확하게 나타낸 것인지는 입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그분의 종은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께 죽은 자를 살려 달라고 요청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엘리사는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한 죽음을 맞도록 운명 지어진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줄 수 있으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우리와 온전히 동일시하심으로 우리 중 하나가 되셨고 우리가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죽음을 취하셨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목사, 교수, 신학자로 직임을 다하고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