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표 666-하나님 백성의 표 666?
열왕기상 3장 13절의 666은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666을 해석하는 데도 중요한가?
그렇다. 그럴 수 있다. 666은 성경에서 보통은 악하고 위협적인 무엇인가를 대표한다. 그러나 나는 666이 성경에서 선한 것과 관련이 있는데 바벨론의 수중에서 속임수의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 666은 성경의 두 곳에서 긍정적으로 언급된다.
부와 복과 666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3장 13절에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많은 부를 약속하셨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왕상 10:14)라는 구체적인 진술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재물로 솔로몬에게 복을 주셨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금의 수량은 하나님의 복을 표현했다. 요한계시록의 짐승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이해되는 666을 이용해서 짐승 자신이 하나님의 복 주심의 성취이고 자기 자신이 모든 이에게 복이 된다고 말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강조하는 요한계시록 13장의 맥락에서 숫자 666은 기만적인 세력인 짐승을 폭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주님의 복은 일곱째 날 안식일과 분명히 관계 있고(창 2:3),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숫자 6과 연관되어 있다. 복의 절대적인 결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과 666
두 번째 구절은 에스라 2장 13절이다. 여기서 666은 바벨론과 연관이 있다(1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 중 아도니감 후손은 총 666명이었다(스 2:13). 그 수는 분명히 바벨론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청하고 순종한 하나님 백성의 수를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은 자신이 하나님의 순종하는 백성이라고 속이기 위해 그 수를 이용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표를 하나님의 인의 모조품이라 말하는 상황에 그 수를 놓아둠으로 짐승의 속임수를 폭로한다. 다시 말해 짐승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않는다.
복, 하나님의 백성, 바벨론
이 두 본문 중에서 어느 것이 요한계시록 666 상징의 배경인가? 에스라 2장 13절의 경우 본문에서 666은 서기관의 실수일 수 있으며, 원래의 숫자는 667(평행절인 느헤미야 7장 18절 참조)일지도 모르기에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원숫자가 666이고 느헤미야의 기록이 서기관의 실수라면 에스라 2장 13절은 요한계시록의 666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열왕기상 10장 14절의 경우 그 수는 문맥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관련이 있으며 요한계시록 13장 18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경우에는 앞서 진술한 대로 666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짐승에 적용할 수 있다. 열왕기상 10장 13절과 에스라 2장 13절 양쪽 모두를 666에 대한 올바른 언급이라고 결론짓는다면 그때는 위에서 말한 두 생각을 결합하여 볼 수 있다. 마지막 때의 바벨론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복 주심의 표현이고,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의 현현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바벨론이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왜곡된 불완전일 뿐이며, 짐승의 표와 666이 하나님의 인의 모조품임을 강력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신학 박사, 목사, 교수, 신학자로 직임을 다한 뒤 은퇴했다.